강릉을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냐고 물으면 절반은 고개를 젓는다. 바다도 보고 커피도 마시고 순두부까지 먹으려면 최소 1박은 해야 하지 않느냐는 이유에서다. 그런데도 청량리역에서 KTX-이음 좌석 창가에 앉아본 사람이라면 반응이 다르다. 산이 바다로 바뀌는 풍경을 지켜보는 데 걸리는 시간이 채 두 시간이 안 되고, 강릉역에 내리는 순간부터 밤 열차를 타기까지 남는 시간이 생각보다 넉넉하기 때문이다. 이번 코스는 안목해변이나 경포호를 먼저 찍고 오는 흔한 순서 대신, 명주동 한옥거리에서 하루를 열어 월화거리 야경으로 마무리하는 동선으로 짰다. 같은 지명을 걸어도 순서를 바꾸면 사진첩에 남는 장면이 통째로 달라진다.
청량리역 10시 14분, 늦은 출발이 오히려 편한 이유
새벽같이 나서야 당일치기가 성립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이 코스는 그렇지 않다. 청량리역에서 KTX-이음 10시 14분 열차를 타면 강릉역에는 11시 58분에 도착한다. 요금은 입석이 아닌 일반실 기준으로 27,600원 안팎이다. 아침잠을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인데, 대신 저녁 일정이 조금 촘촘해진다. 강릉역에 도착하면 역사 안 관광안내소에서 시내버스 노선도 한 장을 챙기는 걸 추천한다. 지도 앱만 믿고 걷다가 배차 간격이 30분 가까이 벌어지는 노선을 만나면 낭패이기 때문이다.
명주동 한옥거리, 카페 사진 대신 골목 사진
강릉역에서 택시로 10분이면 명주동에 닿는다. 안목이나 경포 쪽으로 곧장 가는 사람이 대부분이라 이 동네는 상대적으로 한산하다. 그런데 막상 가보면 100년 가까이 된 적산가옥과 한옥이 좁은 골목 사이사이 남아 있어서, 사진 찍기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발걸음이 자꾸 멈춘다. 붉은 벽돌 담벼락 위로 넘어온 능소화 넝쿨, 낡은 나무 대문 옆에 놓인 이 빠진 화분 하나까지도 그냥 지나치기 아까운 골목이다. 강릉대도호부관아까지 걸어서 5분 거리인데, 입장료는 성인 기준 천 원 정도다. 조선시대 지방 관청 건물이 이렇게 원형에 가깝게 남아 있는 경우가 드물어서, 툇마루에 앉아 잠깐 숨을 돌리기에도 좋다. 관아 마당의 배롱나무 아래 벤치는 그늘이 짙어서 늦여름에도 앉아 있을 만하다.

점심은 초당순두부마을, 원조 논쟁은 피해가는 게 낫다
명주동에서 초당순두부마을까지는 택시로 15분 남짓이다. 순두부젓국백반이 이 동네 기본 메뉴인데, 한 그릇에 10,000원에서 13,000원 사이로 골목마다 가격이 비슷하다. 어느 집이 진짜 원조냐를 두고 오래된 논쟁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검증된 한 곳만 찾아 헤매는 사람이 많은데, 정작 뚜껑을 열어보면 골목 전체가 평준화된 내공을 갖고 있다. 바닷물을 간수 삼아 두부를 굳히는 방식 자체가 동네 전체에 퍼져 있어서, 뽀얀 순두부가 그릇에 담기자마자 김이 몽글몽글 올라오는 모양새는 어느 집이나 비슷하다. 순두부짜글이나 순두부전골까지 더하면 15,000원을 넘기기도 하는데, 혼자라면 기본 백반 하나로도 충분히 든든하다.
경포호, 걷기보다 자전거로 도는 오후
초당순두부마을에서 경포호까지는 걸어서 20분, 택시로는 5분이다. 호수 둘레길이 총 4.3킬로미터라 걸어서 완주하려면 두 시간 가까이 걸리는데, 오후 일정을 생각하면 이 구간은 자전거로 도는 편이 낫다. 경포호 초입 대여소에서 자전거를 빌리면 1시간에 3,000원, 전기자전거는 5,000원 선이다. 페달을 밟으며 소나무 숲과 벚나무 그늘을 지나 경포대 정자 쪽까지 도는 데 40분이면 충분하고, 걸어서 도는 것보다 체력이 훨씬 덜 든다. 경포대는 보물로 지정된 조선시대 누각인데 의외로 입장료가 없다. 정자에 올라 호수와 저 멀리 바다가 한 프레임에 걸리는 풍경을 보면, 관동팔경 중 하나로 꼽히는 이유가 납득이 간다.
강문해변, 안목보다 조용한 산책 코스
경포호에서 강문해변까지는 자전거로 15분, 도보로는 30분 정도다. 안목해변의 명성에 가려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은데, 막상 가보면 해안선을 따라 놓인 솟대다리와 알록달록한 조형물들이 은근히 사진 찍을 맛이 난다. 파도 소리를 들으며 다리를 건너다 보면 해변 바로 뒤편으로 에디슨과학박물관과 강릉인형의집 건물이 슬쩍 모습을 드러내는데, 아이와 함께 온 가족 여행객이라면 이 구간에서 30분 정도 더 머물게 되는 경우도 흔하다. 해변 자체는 안목보다 훨씬 짧아서 백사장을 왕복하는 데 15분이면 되고, 카페보다 파도 소리에 집중하고 싶은 사람에게 어울리는 구간이다. 비가 오는 날이라면 해변 산책 대신 이 박물관에서 시간을 채워도 아쉽지 않다.

안목해변 커피거리, 노을 시간에 맞춰 도착하기
강문해변에서 안목해변까지는 해안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20분, 택시로는 5분 안쪽이다. 이 코스에서는 일부러 도착 시간을 오후 6시 전후로 맞춘다. 낮 시간대 커피거리가 사람으로 가득 차는 것과 달리, 해가 기울기 시작하면 자리가 조금씩 빈다. 통유리창 너머로 붉게 번진 노을이 파도 위에 부서지고, 그 빛이 커피잔 표면까지 스며드는 순간이 있다. 아메리카노 한 잔이 5,500원에서 6,500원 사이인데, 낮에 마시는 커피와는 확실히 다른 값을 하는 셈이다. 100곳 넘는 카페가 늘어선 거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걸으면 왕복 40분쯤 걸리니, 노을이 완전히 지기 전에 한 바퀴 돌아보는 일정을 권한다.

월화거리와 강릉중앙시장, 야경으로 마무리
안목해변에서 강릉중앙시장까지는 버스로 20분, 택시로는 10분 남짓이다. 시장 바로 옆에 있는 월화거리를 그냥 지나치는 사람이 많은데, 옛 철길을 따라 조성된 이 산책로는 해가 완전히 지고 조명이 켜지면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기찻길 모양 바닥과 조형물 사이로 야간 조명이 켜지는 시간이 보통 저녁 7시 전후라, 강문과 안목을 오후에 도는 이 코스와 시간이 얼추 맞아떨어진다. 월화거리를 통과하면 자연스럽게 중앙시장 입구로 이어지는데, 시장은 밤 9시까지 열려 있어서 닭강정과 오징어순대, 씨앗호떡으로 저녁 겸 간식을 해결하기 좋다. 바삭한 튀김옷 안에서 육즙이 터지는 닭강정과 매콤달콤한 양념이 겉면에 반질하게 발린 오징어순대, 철판 위에서 노릇하게 눌러 부친 씨앗호떡까지 골고루 사면 셋이 먹어도 2만 원을 넘기지 않는다. 아케이드 지붕이 덮여 있어서 비가 오는 날에도 우산 없이 돌아다닐 수 있다는 점도 이 시장의 장점이다.
강릉역으로, 밤 열차를 놓치지 않으려면
중앙시장에서 강릉역까지는 걸어서 25분, 짐이 있다면 택시로 5분이면 충분하다. 청량리행 KTX-이음 막차는 밤 9시 40분대에 있는데, 이 코스대로 움직이면 시장에서의 여유를 한 시간 정도 남기고 역으로 이동해도 늦지 않는다. 하루 총 경비는 왕복 기차값을 빼고 관아 입장료, 자전거 대여, 점심, 커피, 저녁 간식까지 합쳐 1인 5만 원에서 6만 원 사이면 여유 있게 돌아볼 수 있는 수준이다. 열차 안에서 창밖으로 산이 다시 어두워지는 걸 보고 있으면, 아침에 봤던 바다가 벌써 하루 전 일처럼 느껴진다.
대중교통만 이용한다면, 그리고 아이와 함께라면
택시 위주로 짠 동선이지만 대중교통만으로도 못 다닐 정도는 아니다. 구간마다 302번이나 308번 버스로 바꿔 탈 수 있는데, 배차 간격이 20분에서 30분 정도 벌어지는 노선도 있어서 시간을 넉넉히 잡아야 한다는 점만 기억하면 된다. 아이를 동반한 가족 여행이라면 경포호 자전거 대여를 건너뛰고 강문해변의 에디슨과학박물관과 인형의집에서 머무는 시간을 늘리는 편이 훨씬 수월하다. 아이가 지치는 시점을 감안해 저녁 코스를 조금 앞당겨, 월화거리를 해가 완전히 지기 전부터 걸어보는 것도 방법이다.
자주 묻는 질문
Q. 자전거를 안 타면 경포호는 그냥 건너뛰어야 하나요?
그렇지는 않다. 걷기만으로 돌아도 경포대 정자까지 왕복 1시간 정도면 핵심 구간은 다 볼 수 있다. 다만 이 코스처럼 하루에 다섯 곳 넘는 장소를 도는 일정이라면 자전거로 시간을 아껴두는 편이 저녁 월화거리 야경을 놓치지 않는 데 유리하다.
Q. 초당순두부마을과 강문해변, 안목해변을 다 도는데 짐은 어떻게 하나요?
강릉역 물품보관함을 이용하면 된다. 소형 사물함이 3,000원, 중형이 4,000원 선이고, 하루 종일 맡겨도 요금 차이가 크지 않다. 캐리어를 끌고 명주동 골목이나 순두부마을 좁은 길을 다니는 것보다 훨씬 수월하다.
Q. 밤 9시 40분대 막차를 놓치면 어떻게 하나요?
강릉역 기준으로 심야 시간대에도 시외버스나 고속버스 옵션이 남아 있긴 하지만, 배차가 뜸하고 서울까지 3시간 넘게 걸리는 경우가 많다. 이 코스대로 저녁 7시쯤 월화거리에 도착하도록만 맞춰두면 막차를 놓칠 걱정 없이 여유롭게 시장 구경까지 마칠 수 있다.
같은 강릉이어도 명주동에서 시작해 월화거리로 끝내면, 안목해변부터 도는 흔한 순서와는 다른 하루가 된다. 바다와 커피만 보고 돌아가는 여행에 살짝 아쉬움이 남았던 사람이라면, 다음 강릉행은 이 동선으로 한번 바꿔볼 만하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