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년 6월 22일, 미국인 역사학자 폴 코속은 페루 남부 사막 위를 경비행기로 지나가다가 창밖을 내려다봤다. 그 순간 조종사에게 손짓으로 기체를 다시 돌려달라고 요청했다. 그날은 하지였다. 우연히도 그가 내려다본 새 모양 그림 하나의 날개 끝이, 해가 지는 방향과 정확히 일직선으로 겹쳐 있었다. 코속은 그 자리에서 이 사막을 “세상에서 가장 큰 천문학 책”이라 불렀다. 그런데 정작 이 그림을 그린 나스카 사람들은 자기 손으로 무엇을 완성했는지 하늘에서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비행기는커녕 열기구조차 없던 시대에, 그들은 대체 무슨 확신으로 가로 100미터가 넘는 벌새와 원숭이를 사막 바닥에 새겼을까.
우연히 발견된 “세상에서 가장 큰 화폭”
사실 나스카 라인은 코속이 처음 본 것도 아니었다. 1927년 페루 고고학자 토리비오 메히아 세스페데스가 인근 언덕에서 이미 몇몇 선을 목격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다만 당시엔 그저 버려진 관개수로 흔적 정도로 치부됐다. 하늘에서 내려다봐야 비로소 정체가 드러나는 그림이었으니, 땅 위를 걷던 사람 눈에는 좀처럼 잡히지 않았던 셈이다. 코속의 발견 이후 1940년, 독일 출신 수학자 마리아 라이헤가 이 조사에 합류한다. 라이헤는 이후 40년 넘게 사막에 텐트를 치고 살다시피 하며 줄자와 빗자루만으로 지상화를 측량하고 지켰다. 그런데 흥미로운 대목은, 라이헤 본인조차 처음엔 이 일에 낄 생각이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코속의 통역으로 잠깐 일손을 보태러 왔다가, 하지 무렵 사막에 드리운 그림자 속에서 선이 살아나는 광경을 목격한 뒤 평생을 여기 묻기로 결심했다고 전해진다.

축구장 몇 개가 아니라 서울 면적에 가까운 규모
나스카 라인 하면 보통 벌새나 거미 그림 몇 점을 떠올리기 쉬운데, 실제 규모를 알면 그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지상화가 흩어져 있는 범위는 50제곱킬로미터가 넘고, 선을 모두 이으면 총 길이가 1,300킬로미터를 훌쩍 넘는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왕복하고도 남는 거리다. 개별 도형 크기도 제각각이라, 작은 것은 5미터 남짓이지만 큰 것은 100미터를 넘어간다. 콘도르 한 마리를 그린 도형은 날개 끝에서 끝까지 130미터가 넘는다고 하니, 지상에서는 절대 전체 모습을 가늠할 수 없는 크기다. 의외로 이 그림들은 땅을 파거나 물감을 칠해서 만든 게 아니다. 사막 표면의 검붉은 산화철 자갈층을 걷어내면 그 아래 밝은 회백색 흙이 드러나는데, 나스카 사람들은 이 색 대비 하나만으로 수백 개의 그림을 완성했다. 건조하고 바람도 거의 불지 않는 나스카 사막의 기후 덕에 2,000년 가까이 그 선이 지워지지 않고 버텨온 것이다.
왜 그렸을까 — 갈라지는 가설들
마리아 라이헤가 평생 밀었던 주장은 천문 달력설이었다. 특정 선이 하지나 동지의 해 뜨는 방향, 별자리 위치와 맞아떨어진다는 관찰에서 나온 가설이다. 그런데 막상 후대 연구자들이 컴퓨터로 전체 선의 방향을 통계적으로 검증해보니, 우연히 맞아떨어질 확률과 큰 차이가 없다는 반박이 나왔다. 1968년 미국 천문학자 제럴드 호킨스가 이끈 연구팀이 대표적이다. 이 때문에 순수 천문 캘린더설은 지금은 힘을 많이 잃은 상태다.
천문 캘린더설이 밀려난 자리에서 최근 학계가 좀 더 주목하는 쪽은 물과 관련된 의식설이다. 지질학자 데이비드 존슨은 1990년대 나스카 지역의 선들이 지하 수맥과 계절성 하천 경로를 표시한다고 주장했다. 사막 한복판에서 농사를 지으려면 물이 어디 있는지가 생사를 가르는 문제였을 테니, 물길을 신성하게 여겨 그 위에 그림을 남겼다는 논리는 나름 설득력이 있다.
여기에 더해 2024년 야마가타 대학 사카이 마사토 교수팀이 IBM과 함께 진행한 AI 분석 결과도 이 흐름에 힘을 보탰다. 이들은 드론과 위성 사진에 물체 인식 인공지능을 학습시켜 6개월 만에 새로운 지상화 303점을 추가로 찾아냈는데, 이 중 81.6%가 사람이나 사람을 닮은 형상이었고 대부분이 고대 보행로에서 평균 43미터 이내에 자리하고 있었다. 연구팀은 이 형상들이 순례자들이 걸으며 눈으로 확인하고 지나가던 일종의 이정표이자 제의 행렬의 경로 표시였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거대한 동물 도형과 달리 작은 인물상들은 애초에 하늘에서 보라고 그린 게 아니라, 걷는 사람 눈높이에서 순서대로 마주치도록 배치됐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이런 진지한 고고학적 접근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에서, 훨씬 더 널리 퍼진 가설이 하나 있다. 바로 외계인 활주로설이다.

외계인 활주로설, 그리고 정작 빠진 질문
1968년 에리히 폰 데니켄이 《신들의 전차》에서 사다리꼴 도형을 우주선 활주로라 주장한 이후, 나스카 라인은 대중문화에서 오랫동안 외계인의 흔적으로 소비돼왔다. 그런데 이 가설은 학계에서는 거의 다뤄지지 않는다. 나스카 도자기에 새겨진 벌새·원숭이 무늬가 지상화 속 형상과 사실상 똑같이 겹친다는 점부터가 걸린다. 지상화가 외부에서 이식된 것이 아니라 나스카 사람들 자신의 문양 체계에서 자연스럽게 확장된 결과물이라는 증거가 이미 충분한 셈이다. 활주로설의 가장 큰 약점은 사실 따로 있다. 만약 도형이 착륙 유도용이었다면 정밀한 직선과 규칙적 배치가 필요했을 텐데, 실제로는 선들이 서로 교차하고 겹치는 경우가 흔해서 항공 유도 목적으로는 오히려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이 많다.
그렇다면 하늘에서 보라고 그린 것도 아닌데, 이토록 크고 정교한 직선을 비행 수단도 없이 어떻게 그렸을까 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의외로 이 부분은 실험으로 상당 부분 재현됐다. 1980년대 회의론자 조 니켈과 동료들은 나무 말뚝과 밧줄만으로 대형 직선과 나선 도형을 실제 사막 지형에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원리는 오늘날 건축 현장의 먹줄 치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우선 작은 도안을 그려 비율에 맞춰 격자를 나누고, 그 격자의 각 교차점을 사막 위에 말뚝으로 옮겨 박은 뒤, 말뚝 사이를 팽팽한 밧줄로 이어 방향을 고정한다. 그 다음은 밧줄을 따라 걸으며 표면 자갈을 옆으로 밀어내기만 하면 된다. 곡선 부분은 밧줄 한쪽 끝을 축으로 고정하고 나머지 끝을 돌리는 방식으로 컴퍼스처럼 그려냈다. 특별한 도구도,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시점도 필요 없는 방식이다. 다만 그렇게 그린 그림이 완성된 순간 정확히 어떤 모습으로 보일지, 그 결과물을 나스카 사람들 자신은 죽을 때까지 눈으로 확인하지 못한 채 오직 계산과 신앙만으로 밀어붙였다는 사실은 여전히 묘한 여운을 남긴다.
2024년 이후, 이야기는 계속 갱신되는 중
나스카 라인 연구는 20세기에 멈춘 옛날 이야기가 아니다. 2022년 야마가타 대학팀이 168개의 신규 지상화를 보고했고, 2024년에는 같은 팀이 AI의 도움으로 절반에 가까운 기간을 단축해 303개를 한꺼번에 추가로 확인했다. 2020년 기준 알려진 지상화가 430여 개였던 걸 감안하면, 불과 4년 만에 규모가 두 배 가까이 늘어난 셈이다. 이렇게 새로 발견된 그림 중에는 칼을 든 범고래, 낯설게 생긴 인간형 형상도 포함돼 있어 한동안 해외 매체에서 “외계인 같다”는 자극적 헤드라인으로 소비되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연구팀의 결론은 그 반대에 가깝다. 형상이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는 외부에서 온 무언가라서가 아니라, 우리가 나스카 사람들의 도상 체계와 상징 문법을 아직 다 해독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쪽이다. 앞으로 AI 분석 범위가 넓어질수록 지금 알려진 500여 개 도형 숫자는 계속 늘어날 가능성이 높고, 그때마다 물 의식설이든 순례로설이든 기존 가설도 함께 수정될 여지가 크다. 2,000년 전 사막 위에 남겨진 발자국 하나하나가, 이제야 인공지능이라는 낯선 도구를 통해 다시 말을 걸어오고 있는 셈이다.

자주 묻는 질문
Q. 나스카 라인은 지금도 직접 가서 볼 수 있나?
가능하다. 다만 지상에서는 형태를 알아보기 어려워 대부분 경비행기 투어로 상공에서 관람한다. 페루 리마에서 남쪽으로 약 400킬로미터 떨어진 나스카 인근 공항에서 30분 안팎의 소형 경비행기 투어가 운영되고 있다.
Q. 왜 2,000년 가까이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을까?
나스카 사막은 연간 강수량이 20밀리미터 안팎에 불과하고 바람도 약한 편이라 침식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여기에 표면 자갈층이 태양열을 받아 얇은 광택 층을 형성하면서 아래 흙과의 색 대비가 오래 유지되는 것도 보존에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분석이 있다.
Q. 나스카 라인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인가?
그렇다. 199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으며, 이후 훼손을 막기 위해 일부 구역은 차량과 도보 접근이 엄격히 제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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