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전국 22개 지역의 전통시장과 대형유통업체를 돌며 조사한 결과가 하나 나왔다. 올해 추석 차례상을 차리는 데 드는 평균 비용, 19만 6,630원. 작년보다 1.5% 내렸다. 사과 5알, 배 5알, 밤과 대추 한 봉지씩, 조기 세 마리, 소고기 산적용 우둔살 300g 정도를 사면 딱 이 금액대가 나온다고 보면 된다. 숫자만 보면 별것 아닌 것 같은데, 진짜 흥미로운 건 따로 있다. 이 돈을 쓸 집이 10곳 중 3곳도 안 된다는 거다. 올해 차례를 지내겠다고 답한 가구는 27.3%. 작년(40.4%)보다 13.1%포인트 줄었고, 2016년(74.4%)과 비교하면 10년 새 3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그런데 이 통계를 보고 “아, 이제 안 차려도 되는구나” 하고 안심할 수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적다. 나머지 27.3%, 그러니까 여전히 상을 차려야 하는 집에 속해 있다면 얘기가 다르다. 게다가 올해 처음 며느리로, 사위로, 혹은 장남으로 이 일을 떠맡게 됐다면 더더욱. 인터넷에 “차례상 차리는 법”을 검색해봐도 한자어로 뒤범벅된 설명만 잔뜩 나오고, 정작 우리 집은 어떻게 하는지는 아무도 안 알려준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기본 원칙 6가지, 지역과 집안마다 다른 이유, 요즘 뜨는 반가차례상 트렌드, 성묘 준비물, 그리고 명절 스트레스를 줄이는 현실적인 방법까지 순서대로 정리했다.

차례 지내는 집, 왜 이렇게 줄었을까
단순히 “요즘 애들이 전통을 안 지켜서”라고 하면 억울한 사람이 많을 거다. 실제 조사에서 차례를 지내겠다고 답한 가구 중에서도 절반이 넘는 50.9%는 “전통 예법에 맞춰 간소화”한다고 답했다. 아예 안 지내는 게 아니라 하긴 하는데 힘을 빼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는 뜻이다. 차례상에 수입 과일을 올리겠다는 응답도 10곳 중 4곳에 육박했다. 예전 같으면 “제사상에 외국 과일이 웬 말이냐”는 소리가 나왔을 텐데, 지금은 그냥 사과값이 비싸면 다른 과일로 대체하는 게 자연스러운 선택이 됐다.
여기에 하나 더, 명절 준비의 어느 부분이든 돈으로 대체할 의향이 있다고 답한 비율이 81.3%였다. 전을 부치느니 사서 올리겠다는 집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부모 세대는 이걸 서운해할 수도 있지만, 막상 물어보면 의외로 “그럼 편하게 사서 해라”라고 먼저 말하는 어른도 적지 않다. 시대가 바뀌었다는 걸 자식보다 부모가 먼저 체감하는 경우도 생각보다 흔하다.
그래도 차린다면, 기본 원칙 6가지
한자어 여섯 개를 한꺼번에 외우려면 머리부터 아파온다. 그래도 최소한 어른 앞에서 “왜 이렇게 놨냐”는 소리를 안 들으려면 이 정도는 알아두는 게 낫다. 딱 여섯 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홍동백서(紅東白西)는 붉은 과일은 동쪽, 흰 과일은 서쪽에 놓는다는 원칙이다. 사과나 감처럼 붉은 계열은 제사상을 마주 보고 왼쪽, 배처럼 흰 계열은 오른쪽에 두면 된다. 조율이시(棗栗梨枾)는 대추, 밤, 배, 감 순서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놓으라는 건데, 집안에 따라 이 순서가 조금씩 바뀌기도 한다.
어동육서(魚東肉西)는 생선은 동쪽, 고기는 서쪽. 두동미서(頭東尾西)는 생선 머리를 동쪽으로 두라는 뜻인데, 이건 은근히 헷갈려서 매년 검색하는 사람이 많다. 반서갱동(飯西羹東)은 밥은 서쪽, 국은 동쪽에 놓는 것으로 우리가 평소 밥상을 차리는 것과 정반대라 처음 하는 사람은 꼭 한 번은 실수한다. 좌포우혜(左脯右醯)는 포는 왼쪽, 식혜는 오른쪽. 여기에 적전중앙(炙奠中央)이라고 해서 산적이나 전 종류는 상 한가운데 놓는다는 원칙까지 더하면 웬만한 상차림은 얼추 맞춰진다.
막상 해보면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그림 한 장 프린트해서 상 옆에 붙여놓고 하나씩 확인하면 초보자도 30분이면 끝낸다. 문제는 이 여섯 가지 원칙을 아무리 정확히 외워도, 옆집은 전혀 다르게 차린다는 거다.
지역도 다르고, 집안도 다르다
여기서 많은 사람이 억울해한다. 분명히 검색해서 배운 대로 차렸는데 시어머니가 “우리 집은 그렇게 안 한다”고 하는 경우다. 실제로 차례상 차리는 법은 정해진 정답이 없다. 지방과 가문에 따라 달라서 어느 쪽이 맞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경상도 쪽 일부 집안은 문어를 통째로 올리는 반면, 다른 지역에서는 조기나 굴비를 주로 쓴다. 적을 육적, 어적, 소적 세 가지로 나눠 세 켜로 쌓는 집이 있는가 하면, 그냥 한 접시에 담는 집도 있다.
불교나 기독교를 믿는 집안에서는 차례 자체를 아예 생략하거나 간단한 감사 예배 형식으로 바꾸기도 한다. 정답은 늘 “우리 집 방식”이다. 처음 차례상을 차리게 됐다면, 원칙을 외우는 것보다 먼저 할 일은 정보 수집이다. 작년 사진을 찾아보거나 손위 어른에게 직접 물어보는 게 훨씬 빠르다. 이렇게 물어보는 게 번거롭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의외로 어른들은 이런 질문을 반가워한다. 관심을 갖는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이렇게도 차린다 — 반가차례상과 완제품
최근 몇 년 사이 백화점과 대형마트마다 명절 전 완제품 코너가 눈에 띄게 커졌다. 전, 나물, 탕국까지 미리 조리된 상태로 사서 데우기만 하면 되는 상품들이다. 업계에서는 이런 흐름을 두고 격식은 갖추되 부담은 줄인 상차림이라는 뜻에서 반가차례상이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다. 가격대는 4인 기준 전·나물·탕국 세트가 5만~8만 원 선으로 형성돼 있고, 백화점 식품관 제품일수록 기름을 덜 써서 느끼함이 덜하다는 후기가 많다. 이렇게까지 사 먹어도 되나 싶은 사람도 있겠지만, 막상 맛을 보면 손맛과 큰 차이가 안 나는 제품이 꽤 많다. 전은 튀김옷 배합이 관건인데, 공장에서 대량으로 뽑는 제품이 오히려 균일하고 기름 냄새도 덜한 경우가 많다.
밀키트도 마찬가지다. 재료를 손질해서 양념까지 맞춰 보내주는 상품을 사면, 조리만 집에서 하면 된다. 완전히 사는 것과 완전히 만드는 것 사이, 그 중간 지점을 원하는 사람에게 맞는 선택지다. 갈비찜이나 잡채처럼 시간이 오래 걸리는 명절 음식을 직접 만들고 싶다면 잡채 황금레시피 같은 글을 참고해서 미리 연습해두는 것도 방법이다. 과일도 마찬가지로, 국산 사과·배 값이 유독 비싼 해에는 차라리 수입 과일이나 다른 품종으로 바꾸는 집이 늘고 있다. 이제 시어머니도 “그냥 사서 해라”를 먼저 외치는 시대가 왔다.

차례를 지낸 뒤든, 생략하고 성묘만 가든 — 준비물
상을 다 차렸다고 끝이 아니다. 차례를 지내지 않고 성묘만 가는 집도 많아진 만큼, 어느 쪽이든 성묘 준비물은 따로 챙겨야 한다. 기본적으로 낫이나 전지가위, 간단한 음식과 술, 향과 초, 돗자리 정도는 있어야 한다. 벌레 기피제도 빼놓으면 안 되는데, 9월 말 산소 주변 풀숲은 벌보다 진드기가 더 골칫거리다. 피부에 바르는 로션형보다 옷과 신발 위에 뿌리는 스프레이형이 효과가 오래가고, 긴 소매와 긴 바지를 입어 피부 노출을 최소화하는 게 기본이다. 벌초와 성묘 안전에 대해서는 추석 성묘·벌초 안전수칙에서 더 자세히 다뤘으니, 산에 오르기 전이라면 한 번 훑어보는 걸 추천한다.
명절 스트레스, 줄일 수 있는 만큼 줄이자
차례상을 아무리 잘 차려도 명절 스트레스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상차림보다 사람 사이의 문제가 더 크다는 걸 다들 알고 있을 거다. 그나마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방법은 역할을 미리 나눠놓는 거다. 누가 장을 보고, 누가 전을 부치고, 누가 설거지를 할지 명절 전날이 아니라 최소 일주일 전에 말로 정해두면 당일 아침의 신경전이 확실히 줄어든다. 시간도 정해두는 게 좋다. “차례는 오전 9시, 성묘는 11시까지 마치고 점심 먹은 뒤 각자 정리”처럼 구체적인 시간표가 있으면 애매하게 늘어지는 상황 자체가 생기지 않는다.
그리고 이건 꼭 하고 싶은 말인데, 굳이 안 해도 되는 일까지 억지로 끌고 갈 필요는 없다. 전 다섯 가지를 부치던 집이 세 가지로 줄이거나, 나물을 두 가지에서 한 가지로 줄이는 것만으로도 준비 시간이 절반 가까이 줄어든다. 27.3%라는 숫자가 말해주듯, 이제는 완벽한 상차림보다 지치지 않고 명절을 넘기는 쪽을 선택하는 집이 훨씬 많아졌다. 의외로 그렇게 줄여도 눈치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자주 묻는 질문
Q. 차례상에 사과 대신 다른 과일을 올려도 될까요?
된다. 홍동백서 원칙에서 중요한 건 색깔의 위치지, 과일 이름이 아니다. 붉은 계열 과일이면 사과 대신 홍시나 자두를 써도 되고, 흰 계열이면 배 대신 바나나를 올리는 집도 실제로 있다. 다만 어른이 계신 집이라면 미리 “이번엔 배 대신 이걸로 해도 될까요” 하고 한마디 여쭤보는 게 사소한 마찰을 줄이는 방법이다.
Q. 처음 차례상을 차리게 됐는데, 뭐부터 준비해야 하나요?
가장 먼저 할 일은 원칙 암기가 아니라 정보 수집이다. 작년 상차림 사진이 있는지 찾아보고, 없다면 어머니나 큰집 어른에게 직접 전화해서 물어보는 게 제일 빠르다. 그다음에 홍동백서, 조율이시 같은 기본 배치 원칙을 참고하되, 우리 집 방식과 다르면 무조건 어른 방식을 우선하면 된다. 전통 원칙은 참고용이고, 실제로는 집집마다 다르다는 걸 처음부터 받아들이면 마음이 훨씬 편하다.
Q. 종교적인 이유로 차례를 지내지 않는데, 시댁에는 뭐라고 말해야 할까요?
요즘은 종교나 개인 사정으로 차례를 생략하거나 간단한 가족 모임으로 대체하는 집이 늘고 있어서, 예전만큼 낯선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명절 당일에 불쑥 꺼내기보다는 최소 몇 주 전에 미리 말씀드리는 게 좋다. “차례 대신 다 같이 식사만 하면 어떨까요” 같은 대안을 함께 제안하면 거절이 아니라 조율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다. 급하게 통보하듯 말하는 것과 미리 상의하는 것은 어른이 받는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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