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판에 숫자 일곱 개, 그리고 외계인
외계인이 있냐고 물으면 열에 아홉은 “그걸 누가 알아”라고 답한다. 그런데 1961년 어느 가을날,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의 한 전파천문대에서 한 천문학자가 칠판에 숫자 일곱 개를 나란히 적어 넣고는 은하 안에 우리와 대화할 수 있는 외계 문명이 몇 개쯤 있을지 계산해버렸다. 공식 하나로 외계인 존재를 숫자로 뽑아낸다는 게 황당하게 들릴 수 있지만, 이 사람이 바로 프랭크 드레이크(Frank Drake)고 그날 만든 식이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드레이크 방정식’이다.
그린뱅크 천문대에서 열린 이 모임은 사실 거창한 학회라기보다는 소규모 워크숍에 가까웠다. 참석자는 열 명 남짓, 그중에는 훗날 ‘코스모스’로 유명해지는 칼 세이건도 있었다. 드레이크는 이들과 토론할 공통의 틀이 필요했고, 그래서 즉흥적으로 변수 일곱 개를 곱하는 식을 만들었다. 재미있는 건 이 식이 처음부터 정답을 내놓으려는 목적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드레이크 본인도 훗날 인터뷰에서 이건 “무엇을 모르는지 정리하기 위한 도구”였다고 말한 적이 있다. 어떻게 보면 과학자들이 모여 만든 체크리스트였던 셈인데, 그 체크리스트가 60년 넘게 살아남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줄은 드레이크 본인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방정식 뜯어보기: N = R* × fp × ne × fl × fi × fc × L
칠판에 적힌 이 알파벳 나열을 수학 시험 문제 보듯 대할 필요는 없다. 뜯어보면 의외로 상식적인 질문들의 나열이고, 어찌 보면 “우리가 우주에서 정말 외톨이인가”를 하나씩 확인해가는 체크리스트에 가깝다. 맨 앞의 R*는 우리 은하에서 1년에 별이 몇 개나 새로 태어나는가를 뜻한다. 은하수에는 별이 대략 1천억~4천억 개 있다고 추산되니, 그중 매년 태어나는 별의 숫자만 해도 꽤 큰 값이다. 여기에 fp, 그러니까 그 별들 중 행성을 거느린 비율을 곱한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이 숫자는 순수한 추측에 가까웠다.
그다음이 ne다. 한 별에 딸린 행성 중 생명이 살 수 있는 환경, 그러니까 물이 액체로 존재할 수 있는 ‘골디락스 존’에 들어가는 행성의 평균 개수를 말한다. 여기까지는 그나마 망원경으로 검증이 가능한 영역이다. 문제는 그다음부터다. fl(생명이 실제로 발생할 확률), fi(그 생명이 지적 문명으로 진화할 확률), fc(그 문명이 외부에 신호를 보낼 기술을 가질 확률)로 넘어가면 사실상 답을 아는 사람이 없다. 지구라는 표본이 딱 하나뿐이니 확률이 1분의 1인지 1조분의 1인지조차 가늠하기 어렵다.
우주에 우리 같은 ‘이웃’이 10명 있을까, 1,000만 명 있을까
드레이크가 그날 모임에서 대입해 본 숫자들로는 N이 10 안팎이었다고 전해진다. 은하 전체에 교신 가능한 문명이 열 개쯤 있다는 뜻인데, 놀랍게도 같은 공식에 어떤 값을 넣느냐에 따라 결과는 1보다 작은 값부터 수천만에 이르기까지 천차만별로 벌어진다. 칼 세이건은 이 식에 꽤 낙관적인 상상을 담아 은하계 안에 서울시 인구보다 많은 문명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식의 추정을 내놓은 적이 있고, 반대로 비관적인 쪽에서는 fi와 fc를 극도로 낮게 잡아 지구가 우주라는 망망대해에 홀로 떠 있는 로빈슨 크루소라는 결론에 다다르기도 한다. 똑같은 식에 숫자만 다르게 넣었을 뿐인데 결과가 이렇게까지 벌어진다는 사실 자체가 이 방정식의 정체를 말해준다. 정답을 내는 공식이 아니라, 우리가 아직 모르는 영역이 얼마나 넓은지를 드러내는 거울인 셈이다.
외계 행성 5천 개 시대, 숫자는 얼마나 좁혀졌을까
1961년에는 태양계 밖 행성이 단 하나도 확인되지 않았다. 지금은 사정이 완전히 다르다. 케플러 우주망원경을 비롯한 관측 프로젝트 덕분에 확인된 외계 행성이 5천 개를 훌쩍 넘었고,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fp와 ne는 더 이상 순수한 짐작이 아니게 됐다. 의외로 밝혀진 사실 하나는, 별 주위에 행성이 있는 경우가 드문 일이 아니라 오히려 보편적인 현상에 가깝다는 점이다. 이제는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보며 “저 별에도 행성이 있을까”를 궁금해할 게 아니라, “저 별에 딸린 여러 행성 중 몇 번째 녀석이 지금 이 순간 우리 쪽을 바라보고 있을까”를 상상해야 하는 시대가 된 셈이다.
하지만 fl부터 L까지 뒤쪽 변수들은 여전히 깜깜하다. 지구에서 생명이 탄생하기까지 걸린 시간, 단세포 생물에서 지적 존재로 진화하기까지 걸린 수억 년의 시간을 생각하면 이 과정이 우주적으로 흔한 사건인지 기적에 가까운 우연인지 가늠조차 쉽지 않다. 그래서 ‘레어 어스 가설’ 같은 반대 입장도 나온다. 지구형 행성에 물이 있는 것과 그 물에서 복잡한 생명체가 태어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주장이다. 물론 이것 역시 하나의 가설이지, 확정된 사실로 받아들일 단계는 아니다.

문명의 수명이라는 아슬아슬한 변수
일곱 개 변수 중 가장 서늘한 건 사실 마지막 L이다. 신호를 보낼 기술을 가진 문명이 그 상태로 얼마나 오래 버티느냐를 뜻하는데, 인류 기준으로 보면 전파를 쏘기 시작한 지 채 100년이 안 됐다. 우주적 시간 척도로 보면 눈 깜빡할 사이에도 못 미치는 찰나다. 그런데도 같은 100년 사이 인류는 자신을 몇 번이고 멸망시킬 수 있는 핵무기를 만들었고, 기후 위기라는 자해에 가까운 문제까지 떠안았다. 우주로 신호를 쏘아 보낼 능력을 손에 쥔 바로 그 시점에 스스로를 지워버릴 능력까지 함께 쥐었다는 건 아이러니하다면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래서 일부 연구자들은 L 값이 생각보다 훨씬 짧을 수 있다고 추정한다. 기술 문명이 전파를 쏘기 시작한 뒤 자멸이든 자원 고갈이든 어떤 이유로든 수백 년 안에 조용해져 버린다면, 설령 은하 안에 수천 개의 문명이 명멸했더라도 지금 이 순간 동시에 신호를 주고받을 수 있는 상대는 거의 없을 수밖에 없다. 반딧불이 수천 마리가 넓은 들판에서 제각각 짧게 깜빡이는 장면을 떠올리면 비슷하다. 한 마리가 빛나는 순간과 다른 한 마리가 빛나는 순간이 겹치기란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
그럼 다들 어디 있는 거야: 페르미 역설
드레이크 방정식의 결과값이 수백만이든 수천이든, 거기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질문이 하나 있다.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가 던졌다고 알려진 그 유명한 질문, “그럼 다들 어디 있는데?”다. 은하 나이가 100억 년을 훌쩍 넘고 그 안에 문명이 수백만 개쯤 있었다면 누군가는 벌써 은하 전체로 퍼져나갔어야 하는데 현실은 깜깜무소식이다. 이 간극을 ‘페르미 역설’이라 부른다.
누군가는 문명이 핵전쟁이나 기후 위기 같은 자체 요인으로 금방 멸망해버려서 L 값이 극단적으로 작다고 말한다. 누군가는 애초에 지적 생명체로의 진화 자체가 기적에 가까운 확률이라 fi가 거의 0에 수렴한다고 주장한다. 어느 쪽이 맞는지 가려줄 증거는 아직 없다. 분명한 건 하나다. 드레이크 방정식은 질문지에 답을 채워 넣는 시험이 아니라, 빈칸을 하나씩 들여다보게 만드는 거울이라는 점이다. 숫자 일곱 개를 채우려는 시도 하나하나가 천문학과 생물학, 화학을 넘나드는 연구를 수십 년째 이어오게 만든 원동력이었고, 어쩌면 우리가 밤하늘을 올려다볼 때마다 품는 그 막연한 호기심의 가장 정교한 버전이 바로 이 방정식일지도 모른다.
자주 묻는 질문
드레이크 방정식으로 나온 N값은 정확한 숫자인가요?
아니다. 뒤쪽 변수(fl, fi, fc, L)는 관측값이 아니라 가정값이라 연구자마다 넣는 숫자가 크게 다르다. 그래서 N은 하나의 정답이 아니라 가정에 따라 요동치는 추정 범위로 봐야 한다.
외계 생명체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증거가 나온 적이 있나요?
아직은 없다. 화성 운석이나 특정 외계 행성의 대기 성분을 두고 생명체의 흔적일 수 있다는 가설이 제기된 적은 있지만, 과학계에서 합의된 확정적 증거로 인정된 사례는 지금까지 없다.
드레이크 방정식은 지금도 쓰이고 있나요?
SETI 연구자들과 천체생물학자들은 지금도 이 틀을 기본 참고 모델로 사용한다. 다만 외계 행성 관측 데이터가 쌓이면서 앞쪽 변수(R*, fp, ne)는 점점 더 정밀한 추정치로 대체되고 있고, 뒤쪽 변수는 여전히 열린 질문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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