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아이 석상이 스스로 걸어갔다고? 이스터섬 500년 미스터리, 2025년에 풀렸다

이스터섬 해안에 서 있는 모아이 석상

Written by

in

지도 위에서 점 하나 찾기도 힘든 태평양 한복판, 가장 가까운 유인도와도 2천 킬로미터 넘게 떨어진 고립된 화산섬에 키 10미터짜리 돌덩이가 887개나 줄지어 서 있습니다. 이스터섬, 원주민 말로는 라파 누이(Rapa Nui)라 부르는 곳입니다. 크레인도 바퀴도 없던 사람들이 최대 82톤짜리 석상을 채석장에서 해안까지, 많게는 18킬로미터를 옮겼다는 사실 자체가 오랫동안 미스터리였습니다. 그런데 2025년 10월, 이 오래된 질문에 상당히 설득력 있는 답이 나왔습니다.

18명이 4.35톤짜리 돌을 걷게 만들었다

빙엄턴대학교의 인류학자 칼 리포(Carl Lipo)와 애리조나대학교의 테리 헌트(Terry Hunt)가 이끈 연구팀 이야기부터 해야겠습니다. 두 사람은 이미 2010년대부터 “모아이가 스스로 걸었다”는 가설을 주장해왔는데, 처음엔 학계에서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였습니다. 밧줄로 석상을 좌우로 흔들어 걷게 한다는 게, 말로는 그럴듯해도 실제로 통할지 의문이었으니까요. 그런데 2025년 학술지 Journal of Archaeological Science에 실린 논문에서 이들은 물리 시뮬레이션과 3D 모델링, 그리고 실물 실험까지 동원해 이 가설을 다시 검증했습니다.

핵심은 ‘흔들어서 걷게 하기’였습니다. 실험은 꽤 직접적이었습니다. 무게 4.35톤짜리 콘크리트 모아이 복제품을 만들어 밧줄 세 가닥을 묶고, 사람들이 양옆에서 번갈아 당겼습니다. 처음 움직이는 데는 15명에서 60명 정도가 필요했지만, 일단 움직이기 시작하면 5명에서 25명만으로도 계속 나아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18명이 100미터를 40분 만에 이동시키는 데 성공했다는데, 지그재그로 뒤뚱거리며 걷는 모습이 마치 냉장고를 옮길 때 좌우로 흔들며 미는 동작과 비슷했다고 묘사됩니다. 그냥 밧줄로 끌었다고 하기엔 이상하지 않나 싶었는데, 막상 원리를 들어보면 꽤 그럴듯합니다. 집에서 큰 장롱이나 세탁기를 옮길 때 한쪽 모서리를 축 삼아 씰룩씰룩 돌려가며 이동시켜 본 경험이 있다면, 모아이가 걸었다는 말이 한결 실감 나게 다가올 겁니다.

이스터섬 해안에 서 있는 모아이 석상

왜 하필 배가 볼록하고 앞으로 기울었을까

여기서 흥미로운 부분이 나옵니다. 연구팀이 섬 전역의 모아이 962개를 전수 조사하고, 그중 길가에 쓰러져 있던 62개를 따로 분석했더니 공통된 특징이 드러났습니다. 밑바닥이 D자 형태로 볼록하고, 몸체가 앞으로 6도에서 15도가량 기울어져 있었던 겁니다. 혼자 세워두면 앞으로 고꾸라질 정도의 기울기라고 하니, 언뜻 설계 결함처럼 보이지 않나요. 그런데 의외로 이게 핵심이었습니다. 무게 중심이 앞쪽으로 쏠려 있어야 좌우로 흔들 때 한쪽 모서리를 축으로 삼아 회전하듯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는 겁니다. 완성된 모아이일수록, 그러니까 실제로 운반될 예정이었던 석상일수록 이런 형태가 두드러졌다는 점도 이 가설에 무게를 실어줍니다.

운반로도 이 가설과 딱 맞아떨어집니다. 섬 곳곳에 남아 있는 옛길은 폭이 약 4.5미터로 일정하고, 가운데가 오목한 U자형 단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석상을 눕혀서 굴리거나 썰매로 끌었다면 이런 형태의 길이 나올 이유가 없다는 게 연구팀 설명입니다. 오히려 좌우로 흔들리며 걷는 석상의 움직임을 지탱하기 위해 길 가장자리를 다졌다고 보는 편이 더 자연스럽다는 거죠.

그렇다고 논쟁이 완전히 끝난 건 아니다

벌써 이걸로 미스터리가 다 풀렸다고 하기엔 이릅니다. 과거에는 통나무를 바닥에 깔고 그 위로 석상을 눕혀서 굴렸다는 ‘통나무 굴림설’이 정설처럼 여겨졌습니다. 실제로 1998년 체코의 공학자 파벨 파벨(Pavel Pavel)과 노르웨이 탐험가 토르 헤위에르달(Thor Heyerdahl) 팀이 통나무와 밧줄을 이용해 석상 복제품을 눕혀서 끌어보는 실험을 진행한 적도 있습니다. 이 방식도 어느 정도는 통했습니다. 문제는 이스터섬에 그렇게 많은 통나무를 댈 만한 숲이 있었는지, 그리고 있었다 해도 그게 다 모아이 운반에 쓰였는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는 점입니다. 리포와 헌트의 ‘걷는 모아이’설은 나무를 거의 쓰지 않고도 설명이 된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지만, 이 역시 모든 석상, 모든 구간에 똑같이 적용됐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경사가 급하거나 지형이 험한 구간에서는 또 다른 방법이 쓰였을 가능성도 충분히 남아 있습니다.

나무가 사라진 이유, 생각보다 복잡하다

나무를 베어서 망한 게 아니었다. 이스터섬 하면 따라붙는 또 하나의 서사가 있습니다. 원주민들이 모아이를 만들고 옮기느라 숲을 다 베어버려서 스스로 문명을 무너뜨렸다는, 이른바 ‘에코사이드(ecocide)’ 이야기입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저서 ‘문명의 붕괴’를 통해 널리 퍼진 이 설명은 오랫동안 정설처럼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런데 최근 고고학과 기후학 연구들은 조금 다른 그림을 보여줍니다. 16세기 중반 이후 섬에 수백 년간 이어진 가뭄이 있었고, 폴리네시아쥐가 야자나무 씨앗을 먹어치우면서 숲의 자연 재생이 애초에 어려웠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섬 주민들이 무분별하게 벌목만 한 게 아니라, 여러 요인이 겹쳐서 숲이 서서히 줄어들었다는 쪽에 가깝습니다. 1722년 네덜란드 탐험가 야코프 로헤베인(Jacob Roggeveen)이 부활절 일요일에 이 섬을 처음 ‘발견’했을 당시 인구는 약 3천 명에서 5천 명 정도로 추정되는데, 이 숫자 자체도 완전한 붕괴라기보다는 환경 변화에 적응한 결과로 보는 시각이 늘고 있습니다.

이스터섬 초원 위에 늘어선 모아이 석상들

채석장에 미완성 석상이 수백 개나 남아 있는 이유

라노 라라쿠(Rano Raraku) 채석장에 가보면 이상한 광경을 만나게 됩니다. 완성되지 못한 채 산비탈에 반쯤 파묻힌 모아이가 수백 개나 그대로 남아 있는 겁니다. 그중에는 ‘엘 기간테(El Gigante)’라 불리는, 완성됐다면 높이 21미터에 무게 145톤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초대형 석상도 있습니다. 왜 작업이 중단됐을까 싶은데, 최근 빙엄턴대와 애리조나대 공동 연구팀이 드론으로 채석장 이미지 1만 1천 장 이상을 촬영해 3차원 모델을 만든 결과가 흥미롭습니다. 채석장 안에서도 조각 기법이 다른 작업 구역이 약 30곳이나 확인됐다는 건데, 이는 하나의 중앙 권력이 통제한 작업이 아니라 여러 씨족 집단이 각자 구역을 나눠 독립적으로 작업했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그렇다면 미완성 석상들은 재앙 때문이 아니라, 그저 어느 집단이 작업을 마무리하지 못했거나 우선순위가 바뀌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의외로 시시한 이유일 수도 있다는 거죠.

구조와 분업 이야기에서 잠깐 시선을 돌려, 석상의 ‘얼굴’ 자체로 가보겠습니다. 모아이의 눈에도 사연이 있습니다. 원래 완성된 석상에는 흰 산호로 만든 공막과 붉은 응회암이나 흑요석으로 만든 눈동자가 박혀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보는 텅 빈 눈의 모아이는 원래 모습이 아니라, 세월이 지나며 눈이 빠져버린 상태인 셈입니다. 눈을 끼운 상태에서만 석상이 ‘마나(mana)’라는 초자연적 힘을 갖게 된다고 믿었다는 기록도 있는데, 이걸 알고 나면 사진 속 텅 빈 눈이 조금 다르게 보이기도 합니다.

붉은 모자, 그리고 아직 못 읽은 문자

일부 모아이 머리 위에 얹힌 붉은 원통형 모자, ‘푸카오(pukao)’도 여전히 궁금증을 남깁니다. 이 모자는 몸체와 다른 채석장, 그러니까 푸나 파우(Puna Pau)라는 붉은 화산암 채석장에서 따로 만들어졌는데, 무게가 최대 12톤에 달하는 이 돌덩이를 어떻게 석상 머리 꼭대기까지 올렸는지는 걷는 모아이 가설로도 완전히 설명되지 않습니다. 승용차 예닐곱 대를 합친 무게의 돌을, 나무도 부족했던 섬에서 10미터 가까운 높이까지 밀어 올렸다는 이야기인데 상상만 해도 아찔합니다. 경사로를 이용해 굴려 올렸다는 설, 밧줄과 지렛대로 끌어 올렸다는 설이 있지만 어느 쪽도 확실한 물증은 없습니다.

여기에 더해 롱고롱고(rongorongo)라는 문자도 있습니다. 나무판에 새겨진 이 상형문자는 태평양 지역에서 거의 유일하게 독자적으로 발전한 문자 체계로 추정되는데, 지금까지 전 세계에 남은 판은 20여 개뿐이고 완전히 해독된 적이 없습니다. 19세기 후반 선교사들이 섬에 들어왔을 때 이미 이 문자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고 하니, 뜻을 잃어버린 채 형태만 남은 셈입니다.

이스터섬 언덕에 놓인 모아이 석상과 흐린 하늘

결국 남는 질문

‘걷는 모아이’ 가설은 지금까지 나온 설명 중 가장 정교하고 실험적으로 검증된 편입니다. 그런데도 모든 미스터리가 풀린 건 아닙니다. 887개나 되는 석상 전부가 똑같은 방식으로 옮겨졌는지, 지형이 가파른 구간에서는 어떤 보조 수단이 쓰였는지, 12톤짜리 푸카오는 정확히 어떻게 올렸는지는 여전히 가설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롱고롱고 문자를 해독할 실마리도, 채석장 30개 구역이 정확히 어떤 사회 구조를 반영하는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고 답답해할 일만은 아닙니다. 이스터섬의 거인들은 여전히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미스터리가 하나씩 풀릴 때마다, 다음 질문은 또 얼마나 놀라운 모습으로 나타날까요.

자주 묻는 질문

Q. 모아이 석상은 총 몇 개나 남아 있나요?

섬 전역에 공식적으로 확인된 모아이는 887개입니다. 이 중 상당수는 채석장인 라노 라라쿠 주변에 미완성 상태로 남아 있고, 실제로 해안가 제단(아후, ahu)에 세워져 완성된 형태로 옮겨진 것은 이보다 적습니다. 2025년 연구에서는 이 중 962개(중복 집계 포함 추정치)를 전수 조사해 위치와 형태 데이터를 분석했습니다.

Q. 이스터섬에 실제로 가면 모아이를 직접 만질 수 있나요?

대부분의 모아이는 칠레 정부가 관리하는 라파 누이 국립공원 구역 안에 있고, 훼손 방지를 위해 접근과 접촉이 엄격히 제한됩니다. 2008년에는 한 관광객이 석상 귀 조각을 훼손해 벌금과 함께 섬 출입이 금지된 사례도 있었습니다. 가까이서 보는 것은 가능하지만 만지는 행위는 대부분 구역에서 금지되어 있다고 보면 됩니다.

Q. ‘걷는 모아이’ 실험은 재현 가능한가요, 아니면 한 번뿐인 이벤트였나요?

2025년 논문 이전에도 리포와 헌트는 2011년 미국 방송사와 함께 비슷한 실험을 소규모로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이번 실험은 더 정교한 3D 모델링과 물리 시뮬레이션, 그리고 실제 지형에 가까운 조건에서 재현했다는 점이 다릅니다. 다만 실험은 어디까지나 현대 조건에서의 재현일 뿐, 수백 년 전 실제 운반 과정을 그대로 증명하는 건 아니라는 점은 연구팀도 인정하는 한계입니다.

Comments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