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시 43분, 전주역이 아니라 고속버스터미널에 내렸다면 이미 골든타임 13분이 깎인 셈이다. 한옥마을까지 걸어가면 25분, 시내버스를 타면 12분. 당일치기로 전주를 훑으려면 이 13분 차이가 저녁 일정 전체를 밀어낸다는 걸 이번에야 몸으로 알았다. 서울에서 첫차를 타고 내려온 사람이라면 오전 9시 전에 한옥마을 초입에 서 있어야 저녁 KTX 막차 전에 코스를 다 소화할 수 있다. 늦잠 자고 느긋하게 출발했다가는 남부시장은커녕 오목대도 못 올라가고 그대로 버스에 몸을 싣게 된다.
일정을 시간대로 정리하면 이렇다. 07:43 터미널 도착 및 이동, 09:00 풍남문과 전동성당, 09:15 경기전, 10:00 태조로·은행로 간식 투어, 12:30 한옥마을 안 점심, 14:00 오목대와 자만벽화마을, 18:30 남부시장 청년몰, 20:00 터미널 복귀. 이 뼈대만 머릿속에 넣어두면 중간에 어디서 시간을 아끼고 어디서 여유를 부려도 되는지 감이 잡힌다.
동선부터 정하자: 풍남문 먼저냐, 전동성당 먼저냐
한옥마을 여행기를 검색하면 다들 경기전부터 들어가라고 하는데, 막상 아침 9시에 도착해보면 경기전 매표소 문이 닫혀 있다. 개장은 9시지만 직원들이 준비하느라 실제로 표를 끊어주는 건 9시 5분에서 10분 사이인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순서를 뒤집었다. 터미널에서 버스로 남부시장 정류장에 내려 풍남문을 먼저 본다. 조선시대 전주읍성의 남쪽 문이었던 이 문은 아침 햇살을 정면으로 받는 각도라 사진이 유독 잘 나온다. 관광객이 몰리기 전이라 인생샷 찍겠다고 줄 설 필요도 없다.

풍남문에서 전동성당까지는 신호등 두 개 건너 도보 7분. 고딕과 로마네스크가 섞인 붉은 벽돌 성당인데, 여기서 의외로 시간을 많이 뺏긴다. 미사 시간이 아니면 내부 관람이 제한되니 미리 홈페이지에서 시간표를 확인해두는 게 낫다. 나는 이걸 몰라서 문 앞에서 15분을 서성이다가 외관 사진만 찍고 돌아섰다. 그런데도 아침 햇빛에 비치는 성당 앞마당은 그 자체로 볼만했으니 시간이 아깝진 않았다.
경기전은 9시 15분에 들어가야 한적하다
전동성당 바로 맞은편이 경기전이다. 입장료는 성인 3천 원, 전주시민이나 한복을 입고 오면 무료다. 이 무료 혜택 때문에 한옥마을 골목마다 한복 대여점이 그렇게 많은 거였구나 싶었다. 경기전 안쪽 어진박물관까지 다 둘러보는 데 30분 정도 걸리는데, 9시 15분쯤 들어가면 관람객이 거의 없어서 태조 어진을 모신 정전 앞에서 여유 있게 사진을 찍을 수 있다. 10시가 넘어가면 단체 관광객이 몰려들어 같은 자리에서 순서를 기다려야 한다.
태조로와 은행로, 줄 서는 집은 정해져 있다
경기전 정문을 나서면 바로 태조로와 은행로가 갈라진다. 두 거리 다 기념품점과 간식집이 빼곡한데, 어디서 줄을 서야 하는지는 이미 답이 나와 있다. PNB풍년제과 한옥마을점은 개점 시간인 오전 9시부터 이미 줄이 생긴다. 오리지널 초코파이 한 상자가 만 원 초반대인데, 평일 오전에도 20분은 기다려야 받을 수 있었다. 줄이 길다고 다른 데로 발길을 돌리는 사람도 있지만, 막상 한 입 베어 물면 왜 다들 여기서 사는지 납득이 간다. 편의점에서 사 먹던 물렁한 식감이 아니라 겉은 바삭하게 부서지고 속 마시멜로는 진득하게 늘어지는데, 초콜릿 코팅까지 두툼해서 시판 초코파이랑 아예 다른 음식처럼 느껴진다.
은행로 쪽으로 넘어가면 교동엿가게가 있다. 여기는 줄이 그렇게 길진 않은데 대신 시식 코너에서 눌러앉아 있는 사람이 많아서 매대 앞이 늘 붐빈다. 호박엿이랑 깨엿을 소포장으로 파는데 5천 원 안팎이라 부담 없이 몇 봉지씩 사게 된다. 골목을 걷다 보면 한복 입은 사람들 사이로 교복 대여점, 사진관, 소품샵이 뒤섞여 있어서 어디가 원래 한옥마을 상점이고 어디가 새로 생긴 가게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다.
점심은 한옥마을 안에서 먹지 말라는 말,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여행 커뮤니티를 보면 한옥마을 안 식당은 관광지 물가라 비추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실제로 한옥마을 중심가 비빔밥집 상당수가 1만 4천 원에서 1만 6천 원 선이라 남부시장보다 비싼 건 맞다. 그런데 이건 동선을 안 재보고 하는 소리다. 남부시장까지 걸어가서 점심을 먹고 다시 한옥마을로 돌아오려면 왕복 20분이 그냥 날아간다. 낮 12시 반, 가족회관 근처 골목의 한 비빔밥집에 들어갔더니 대기 없이 바로 자리가 났다. 놋그릇에 나온 육회비빔밥은 1만 5천 원이었는데 나물 가짓수가 열 가지가 넘어서 가격표를 보고 살짝 놀랐던 마음이 금방 풀렸다. 동선 효율을 따지면 몇천 원 더 내고 한옥마을 안에서 먹는 쪽이 남는 장사였다.
자만벽화마을 계단,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점심을 먹은 가족회관 골목에서 오목대 입구까지는 도보 8분. 한옥마을 안쪽, 승암산 방향으로 걸어 들어가면 오목대 오르는 계단이 시작된다. 완만한 편은 절대 아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가파른 경사를 3분 남짓 오르면 정자가 나오는데, 여름 오후라면 그 짧은 시간에도 등이 축축해진다.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한옥마을 기와지붕 전경은 사진으로 본 것보다 훨씬 넓게 펼쳐져 있어서, 올라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벌써 다리가 풀렸다고 여기서 발길을 돌리면 바로 옆 자만벽화마을을 놓치게 되는데, 이 골목이 은근히 알짜다. 담벼락마다 그려진 벽화 사이로 계단식 골목이 이어져서 사람 없는 시간대에 가면 조용히 사진 찍기 좋다.

마지막 코스는 남부시장, 저녁 8시 전에 도착해야 한다
오목대에서 내려와 한옥마을을 관통해 남부시장까지는 도보 20분 정도다. 다리가 슬슬 아파올 시간인데, 여기서 마시는 모주 한 잔이 그 피로를 꽤 달래준다. 막걸리에 계피와 생강, 대추를 넣고 끓인 전주식 전통 음료인데 알코올 도수가 낮아 술이 약해도 부담 없다. 한 컵에 2천 원 안팎이면 살 수 있고, 청년몰 2층 만남의광장에서 피순대 한 접시(1만 3천 원 안팎)를 곁들이면 저녁 식사 겸 마무리로 딱이다. 뜨끈한 국물이 함께 나오는데, 초장에 들깨가루를 듬뿍 풀어 찍어 먹으면 하루 종일 걸은 다리의 피로가 그제야 풀리는 느낌이 든다. 청년몰 야시장은 금요일과 토요일 저녁에만 서기 때문에 평일에 갔다면 이 부분은 아쉽게 넘어가야 한다.
남부시장에서 전주역이나 고속버스터미널까지는 택시로 10분 안팎이다. 저녁 8시쯤 시장을 나서면 저녁 9시 대 KTX나 고속버스를 여유 있게 잡을 수 있다. 아침 7시 43분에 시작해 저녁 8시 모주 한 잔으로 끝나는 이 12시간짜리 동선은, 전주를 가장 밀도 높게 소비하는 치트키에 가까웠다. 이동 시간을 빼면 실제로 걷고 구경한 시간은 여섯 시간 남짓이었는데, 그 안에 성당과 고궁, 시장과 벽화마을까지 다 눌러 담았다는 게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다. 다음에 다시 온다면 완산칠봉시장 쪽 골목까지 욕심내볼 생각이다.
전주 당일치기 자주 묻는 질문
Q. 한옥마을 안에 주차하고 하루 종일 세워둘 수 있나요?
한옥마을 내부는 주차 공간이 좁고 요금도 시간당 오르는 구조라 하루 종일 세워두기엔 부담스럽다. 남부시장 공영주차장이나 오거리 인근 공영주차장에 세우고 걸어 다니는 편이 낫다. 주말 낮에는 골목 안쪽 사설 주차장부터 만차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Q. 한복 대여는 어디서 하는 게 좋나요?
경기전 주변에 대여점이 몰려 있는데, 가격은 3시간 기준 1만 5천 원에서 2만 원대로 다양하다. 한복을 입으면 경기전 입장료가 면제되니 사진도 찍고 입장료도 아끼려면 오전 일찍 대여해서 바로 경기전으로 들어가는 순서를 추천한다.
Q. 여름철에 계단 코스(오목대)는 힘들지 않을까요?
한낮 뙤약볕 아래 오르면 확실히 힘들다. 오전 10시 전이나 오후 4시 이후로 시간을 옮기면 그늘도 많고 체감 더위가 훨씬 덜하다. 물병은 미리 채워서 올라가는 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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