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2년 11월 26일, 이집트 왕가의 계곡. 하워드 카터는 촛불 하나를 든 채 벽에 뚫린 작은 구멍으로 눈을 가져다 댔다. 뒤에서 후원자 카나본 경이 “뭐가 보이나?”라고 물었고, 카터는 이렇게 답했다고 전해진다. “네, 놀라운 것들이 보입니다.” 황금 유물이 촛불에 반사돼 번쩍였다. 그리고 5개월 뒤, 그 촛불을 함께 들여다봤던 카나본 경은 카이로의 한 호텔 방에서 숨을 거뒀다. 이 두 장면 사이에 “파라오의 저주”라는 100년 넘은 이야기가 자리 잡고 있다.

발굴 현장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
카터가 투탕카멘 무덤의 계단을 처음 발견한 건 1922년 11월 4일이었다. 이후 3주가 지난 11월 26일에야 봉인된 문을 열었고, 이듬해 1923년 2월 17일 관이 있는 매장실을 공식적으로 개방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불과 몇 주 뒤인 3월 19일, 카나본 경이 면도를 하다 모기 물린 자리를 잘못 베었다. 별일 아닌 것 같았던 상처가 감염되며 패혈증으로 번졌고, 폐렴까지 겹쳤다. 그렇게 그는 4월 5일 새벽, 카이로 콘티넨털사보이 호텔에서 56세로 사망했다. 매장실을 연 지 약 7주 만이었다.
타이밍이 공교롭긴 하다. 모기에 물린 자리 하나로 사람이 죽는다는 게 흔한 일은 아니니까. 그런데도 당시 이집트에서 패혈증이나 감염으로 인한 사망은 항생제가 없던 시절 드물지 않은 죽음의 방식이었다. 카나본 경은 원래도 자동차 사고 후유증으로 폐가 약했던 사람이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정전된 카이로, 죽어버린 개
여기서부터 이야기가 부풀기 시작한다. 카나본 경이 숨을 거둔 바로 그 순간 카이로 시내 전체가 정전됐고, 영국 하이클레어성에 있던 그의 반려견이 동시에 쓰러져 죽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카터가 키우던 카나리아는 무덤 문을 처음 연 날 밤 코브라에게 잡아먹혔다는 이야기까지 더해졌다. 신빙성 있는 자료로 확인되지 않는, 말 그대로 소문이다. 그럼에도 이런 디테일들이 하나씩 붙으면서 “저주”는 점점 그럴듯한 이야기의 모양을 갖춰갔다.
“죽음이 날개를 달고 온다”는 문구는 어디서 왔나
저주설 하면 빠지지 않는 게 무덤 안에서 발견됐다는 경고 문구다. “파라오의 안식을 방해하는 자에게 죽음이 날개를 달고 찾아오리라.” 그런데 실제로는 이런 명판이 무덤에서 발견된 적이 없다. 이 문구는 발굴 당시 취재 경쟁에서 밀려난 언론들이 만들어낸 이야기에 가깝다는 게 정설이다.
진짜 발화점은 따로 있었다. 1923년 3월 24일, 영국의 소설가 마리 코렐리가 신문에 “내가 가진 희귀한 책에 따르면 봉인된 무덤을 침범한 자에게는 끔찍한 벌이 따른다”는 취지의 글을 기고했다. 며칠 뒤 카나본 경이 정말로 사망하자 이 여성은 순식간에 예언자 취급을 받았다. 당시 런던의 더 타임스가 발굴 보도 독점권을 갖고 있어서 다른 신문사들이 취재할 거리가 마땅치 않았던 사정도 있다. 저주 이야기는 특종 없이도 팔리는 기삿거리였던 셈이다.

하워드 카터는 왜 멀쩡했을까
저주설의 가장 약한 고리는 사실 카터 본인이다. 무덤 안에 가장 오래, 가장 깊숙이 머물렀던 사람은 다름 아닌 카터인데, 그는 이후로도 16년을 더 살다가 1939년 3월 2일 림프종으로 64세에 사망했다. 발굴을 이끈 장본인이 저주를 가장 오래 피해 다닌 셈이니, 이 지점에서 이야기가 좀 이상해진다.
1934년, 고고학자 허버트 윈록은 뉴욕 타임스에 명단을 하나 공개했다. 1922년 무덤 개방 당시 현장에 있었던 22명 중 12년이 지난 1934년까지 사망한 사람은 6명뿐이었다. 1924년 석관 개봉 자리에 있었던 22명 중에서는 단 2명만 사망했고, 미라 포장을 직접 풀어낸 10명 중에서는 단 한 명도 죽지 않았다. 저주가 진짜라면 생존율치고는 너무 후한 숫자다.
이후 2002년 영국의학저널에 실린 마크 넬슨의 연구는 이걸 좀 더 체계적으로 파고들었다. 카터 본인이 기록으로 남긴, 당시 이집트에 있었던 서구인 44명을 추려 저주에 노출된 25명과 노출되지 않은 19명의 수명을 비교한 것이다. 결과는 싱거웠다. 노출된 쪽의 평균 사망 나이는 70세, 노출되지 않은 쪽은 75세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다(p=0.87). 무덤 노출 이후 생존 기간도 각각 20.8년과 28.9년으로, 역시 차이라고 부를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p=0.95). 저주라는 게 있다면 이 정도로 존재감이 없기도 힘들다.

그렇다면 진짜 위험은 무엇이었을까
그런데 아무 근거가 없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니다. 밀폐된 채 수천 년을 버틴 무덤 안에는 실제로 몸에 해로운 것들이 있었다. 과학자들이 새로 개봉된 이집트 무덤 공기를 분석해보니 포도상구균과 슈도모나스 같은 병원성 박테리아, 그리고 아스페르길루스 니게르와 아스페르길루스 플라부스 같은 곰팡이 포자가 검출됐다. 여기에 암모니아 가스나 황화수소까지 섞여 있는 경우도 있었다니, 밀폐된 공간에 오래 갇혀 있던 공기치고는 꽤 독한 조합이다.
이런 곰팡이 포자를 들이마시면 히스토플라스마증이라는 폐 질환에 걸릴 수 있는데, 고열과 림프절 부종, 폐렴 증상을 동반하고 심하면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실제로 1970년대 폴란드에서 카지미에시 4세 국왕의 무덤을 개봉한 학자 12명 중 10명이 몇 주 안에 사망한 사례가 보고되면서 곰팡이설에 다시 힘이 실리기도 했다. 저주라기보다는 밀폐된 공간의 위생학적 문제에 가까운 이야기다.
흥미로운 반전은 최근에 나왔다. 투탕카멘 무덤에서도 검출된 그 아스페르길루스 플라부스 곰팡이가, 백혈병 세포를 억제하는 화합물을 만들어낸다는 연구 결과가 2025년 발표된 것이다. 한때 죽음의 원인으로 지목됐던 곰팡이가 지금은 항암 물질 후보로 연구되고 있으니, 저주라는 딱지가 붙었던 자리에 정작 남은 건 과학 논문 한 편이다.
결과적으로 남는 건
정리해보면 이렇다. 카나본 경의 죽음은 모기 물린 상처에서 시작된 감염과 지병이 겹친 불운이었고, 카터를 비롯한 대다수 발굴 참여자들은 별 탈 없이 오래 살았다. 저주 서사를 완성한 건 초자연적 힘이 아니라 특종에 목마른 1920년대 언론과, 한 소설가의 우연한 예언 아닌 예언이었다. 다만 밀폐된 무덤 안 공기에 병원균과 독성 가스가 섞여 있을 수 있다는 점은 실제로 위험 요소였고, 그건 지금도 고고학 발굴 현장에서 방독면과 환기 절차를 챙기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신과 과학이 한 무덤 안에서 이렇게 오래 뒤엉켜 있었다는 것 자체가, 어찌 보면 이 이야기의 진짜 매력일지도 모른다.
자주 묻는 질문
Q. 무덤 안에 정말 저주 문구가 새겨져 있었나요?
아니다. “죽음이 날개를 달고 온다”는 식의 경고 명판이 무덤에서 실제로 발견됐다는 기록은 없다. 이 문구는 1923년 당시 발굴 보도 독점권이 없던 언론들이 만들어 퍼뜨린 이야기에 가깝다는 게 역사학자들의 대체적인 결론이다.
Q. 발굴에 참여한 사람들이 유독 많이 죽었다는 게 사실인가요?
통계로 보면 오히려 반대에 가깝다. 1934년 허버트 윈록이 정리한 명단에서는 무덤 개방 당시 있었던 22명 중 12년 뒤에도 16명이 살아 있었고, 2002년 영국의학저널 연구에서도 저주에 노출된 그룹과 그렇지 않은 그룹의 평균 사망 나이 차이는 통계적으로 의미가 없었다(70세 대 75세).
Q. 그럼 곰팡이 때문에 죽었다는 이야기는 근거가 있나요?
완전히 지어낸 이야기는 아니다. 밀폐된 무덤 안에서는 아스페르길루스 계열 곰팡이 포자와 병원성 박테리아가 실제로 검출된 사례가 있고, 이를 흡입하면 폐 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는 연구도 있다. 다만 카나본 경의 사망 원인을 곰팡이 하나로 단정할 만큼 결정적인 물증이 나온 건 아니어서, 감염과 지병이 겹친 결과라는 해석이 더 폭넓게 받아들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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