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이후 자꾸 깜빡깜빡한다면 — 건망증과 초기 치매, 뭐가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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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둘째 주 화요일, 마포구의 한 마케팅 회사에서 팀장으로 일하는 47세 이모 씨는 신입 거래처 담당자와 세 번째 미팅을 하다가 얼굴이 화끈거리는 경험을 했다. 명함을 두 번이나 주고받은 사람인데 이름이 도무지 입에서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죄송한데 성함이…” 하고 되묻는 순간, 상대방은 웃으며 넘어갔지만 이 씨는 그날 저녁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자기 전에 스마트폰으로 “40대 건망증 치매 초기”를 검색한 사람이 이 씨 한 명만은 아닐 것이다.

이 정도 실수는 사실 누구나 한 번쯤 겪는다. 문제는 이 씨처럼 그날 밤 유독 마음에 걸리는 사람과, 대수롭지 않게 잊고 넘어가는 사람 사이의 차이다. 마흔 넘으면 다 그렇다는 말, 주변에서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뇌 인지기능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35세 전후로 신경세포와 시냅스 연결이 서서히 줄어들면서 기억을 꺼내는 속도가 느려진다는 설명이 통용된다. 그런데도 막상 이런 설명만으로는 이 씨가 겪은 순간적 진땀이 정말 자연스러운 노화인지, 아니면 눈여겨봐야 할 신호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단순히 느려진 것과, 아예 저장이 안 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건망증, 정말 나이 탓만일까

단순 건망증은 정보가 뇌 어딘가에 이미 저장은 됐는데 꺼내오는 길목에서 잠깐 막히는 현상에 가깝다. 열쇠를 어디 뒀는지 순간 생각이 안 나다가도, 배우자가 “현관 신발장 위 아니야?”라고 힌트를 주면 “아, 맞다!” 하고 바로 떠오르는 식이다. 이 씨처럼 마흔다섯 살 전후로 업무와 육아, 부모 부양까지 동시에 짊어진 사람이라면 이 정도 깜빡임은 하루에도 몇 번씩 겪을 수 있다.

여기서 스트레스가 왜 건망증을 심하게 만드는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만성적으로 긴장 상태가 이어지면 코르티솔이라는 호르몬이 계속 분비되는데, 이 호르몬이 새로운 정보를 저장하는 뇌 부위인 해마의 기능을 일시적으로 둔하게 만든다는 게 여러 연구에서 확인된 내용이다. 쉽게 말해 뇌가 정보를 애초에 제대로 받아 적지 못하는 상태가 되는 셈이다. 수면 부족과 갱년기 호르몬 변화까지 겹치면 이 현상은 더 두드러진다. 그러니 “요즘 왜 이렇게 깜빡하지” 싶다면 병부터 의심하기보다 최근 며칠 잠은 제대로 잤는지, 스트레스가 유독 심했던 시기는 아니었는지 먼저 되짚어보는 게 순서다.

이렇게 설명하면 “그럼 나도 그냥 스트레스성이겠네” 하고 안심하고 싶어지는데, 그렇게 단정 짓기엔 이르다. 힌트를 줘도 전혀 기억을 못 하는 경우, 혹은 그 일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통째로 잊어버리는 경우는 결이 다르기 때문이다. 어제 딸과 나눈 통화 내용을 가물가물해하는 것과, 통화를 했다는 사실 자체를 딸이 말해줘도 “내가 언제 전화했어?”라고 되묻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다.

메모지에 일정을 적으며 기억을 확인하는 중년 여성

경도인지장애라는 중간 지대

건망증이 심해진다고 해서 다음 단계가 곧바로 치매인 것은 아니다. 그 사이에는 경도인지장애(MCI)라는 중간 단계가 존재한다. 경도인지장애는 기억력 저하가 또래보다 뚜렷하게 나타나지만, 일상생활을 스스로 꾸려나가는 데는 큰 지장이 없는 상태를 가리킨다. 밥은 챙겨 먹고 은행 업무도 혼자 처리할 수 있지만, 같은 질문을 반복해서 하거나 방금 들은 이야기를 며칠 뒤 통째로 기억하지 못하는 일이 잦아진다.

여기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자각, 그러니까 메타인지의 유지 여부다. 조금 풀어서 설명하면 이렇다. 단순 건망증을 겪는 사람은 물건을 못 찾으면 “아까 분명히 여기 뒀는데, 내가 왜 이러지” 하며 스스로 답답해하고 다시 찾아 나선다. 잊어버렸다는 사실을 본인이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이다. 반면 경도인지장애나 초기 치매 단계로 접어들면 정반대 반응이 나타난다. 본인은 문제를 전혀 못 느끼거나, 가족이 “아까 그 얘기 또 하시네” 하고 지적해도 “내가 언제 그랬냐”며 부인한다. 잊어버렸다는 사실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니 답답할 일도, 스스로 걱정할 일도 없는 셈이다. 그래서 정작 병원 문을 먼저 두드리는 건 본인이 아니라 곁에서 지켜보던 가족이나 동료인 경우가 많다.

실제로 이런 장면은 명절에 흔히 벌어진다. 오랜만에 만난 자녀가 “엄마, 아까 한 얘기 또 하시네”라고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병원 방문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 정도는 그냥 넘어가도 되는 거 아니냐고 되물을 수 있지만, 당사자는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걸 감안하면 가족의 관찰이 오히려 더 정확한 단서가 될 때가 있다. 직장에서도 비슷하다. 십수 년간 큰 실수 없이 처리하던 업무에서 갑자기 순서를 헷갈리거나 같은 보고서를 두 번 제출하는 일이 반복되면 동료들이 먼저 눈치를 챈다. 물론 과중한 업무나 번아웃 때문일 가능성이 훨씬 크다는 점은 분명히 짚어야겠지만, 휴식을 취해도 나아지지 않고 몇 달째 이어진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병원에서 의료진과 상담하는 중년 남성

신경과 진료를 고민해야 할 체크포인트

그렇다고 사소한 깜빡임마다 병원을 찾을 필요는 없다. 다만 아래 몇 가지가 겹쳐서 나타난다면 한 번쯤 전문의와 상담해볼 필요는 있다.

첫째, 같은 질문이나 이야기를 본인이 자각하지 못한 채 반복하는 경우다. 30분 전에 물어본 걸 또 묻는 정도가 한 달에 몇 차례 이상 이어진다면 눈여겨봐야 한다. 둘째, 늘 다니던 익숙한 길에서 방향 감각을 잃는 경우. 이건 단순한 깜빡임과는 결이 다르다. 셋째, 요리나 공과금 납부처럼 오랫동안 문제없이 해오던 일을 갑자기 순서대로 해내지 못하는 경우다. 넷째, 물건을 엉뚱한 곳에 두고 그걸 두었다는 사실 자체를 통째로 잊는 경우. 리모컨을 냉장고에 넣어놓고 “누가 훔쳐갔다”고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단순히 깜빡한 것과는 다른 신호일 수 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겁부터 나서 사소한 실수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도 막상 신경과 진료실을 찾는 40~50대 상당수는 정밀 검사 결과 정상 범위이거나 스트레스성 건망증으로 판정받는다. 검사 자체가 불안을 키우는 게 아니라, 오히려 확인을 통해 마음을 놓는 계기가 되는 경우가 더 많다는 뜻이다. 본인이 문제를 인지하지 못하거나 지적에 방어적으로 반응하는 가족이 있다면, “치매 검사받아보자”는 식의 직접적인 접근보다는 건강검진 항목에 인지기능 검사를 자연스럽게 포함시키는 방식이 덜 부담스러울 수 있다. 가족이 관찰한 구체적인 사례를 날짜와 상황까지 메모해두면 진료 시 의료진에게 훨씬 도움이 되는 정보가 된다.

자주 묻는 질문

Q. 40대인데 벌써 치매를 걱정해야 하나요?

A. 40대에 발병하는 치매는 전체 치매 환자 중 극히 일부에 해당하는 이른 나이의 경우이며, 대부분의 40대 건망증은 수면 부족이나 스트레스, 다중 업무로 인한 일시적 현상이다. 다만 앞서 언급한 체크포인트가 여러 개 겹치고 몇 달 이상 지속된다면, 나이와 무관하게 신경과 진료를 받아보는 편이 안심하는 데 도움이 된다.

Q. 스트레스 때문에 건망증이 심해질 수도 있나요?

A. 그렇다. 만성 스트레스와 수면 부족은 새로운 정보를 뇌에 저장하는 과정 자체를 방해할 수 있다. 이 경우 기억이 아예 저장되지 않았으니 힌트를 줘도 떠오르지 않을 수 있는데, 이는 병적인 기억력 저하와는 원인이 다르다. 충분한 수면과 스트레스 관리로 호전되는지를 몇 주 지켜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Q. 부모님이 아니라 제 배우자(40대 후반)가 걱정될 때는 어떻게 접근해야 하나요?

A. 본인이 방어적으로 반응한다면 앞서 언급했듯 건강검진에 인지기능 검사를 자연스럽게 끼워 넣는 방식을 권한다. 배우자를 다그치기보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 이상한 점을 느꼈는지 구체적으로 기록해두었다가 진료 때 함께 전달하는 편이 훨씬 정확한 진단에 도움이 된다.

이 글에서 다룬 내용은 일반적인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특정 증상이 건망증인지 경도인지장애인지 혹은 치매 초기 신호인지를 스스로 판단하거나 확진하는 근거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정확한 진단은 전문의(신경과) 상담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점을 꼭 기억해두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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