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는 김치로만 먹는 거 아니냐 싶겠지만, 가을 배추는 김장 전에 먼저 맛봐야 하는 재료다. 여름 배추가 아삭함만 겨우 남은 상태라면, 서리 내리기 직전의 가을 배추는 씹을수록 단물이 배어 나오는 이른바 ‘설탕 배추’에 가깝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배추 속이 꽉 차고 당도가 오르는데, 이 타이밍을 놓치고 바로 김치로 직행시키는 건 솔직히 아깝다.
퇴근하고 지친 몸으로 들어왔는데 뭘 해 먹을지 막막한 날, 배추 반 포기만 있으면 상이 꽤 그럴듯해진다. 겉절이 한 접시, 구수한 된장국 한 그릇, 노릇하게 부친 배추전 한 장. 셋 다 재료비가 몇천 원 수준이고 손이 많이 가지도 않아서, 장 보러 가는 길에 배추 한 포기만 집어 들면 이 세 가지를 한 번에 돌려가며 해 먹을 수 있다.

배추 겉절이, 절이는 시간이 전부다
겉절이는 양념 비율보다 절이는 시간에서 맛이 갈린다. 배추를 소금물에 담가만 두면 되는 줄 알고 대충 10분 만에 건져내는 사람이 의외로 많은데, 그렇게 하면 양념이 배추 표면에서 겉돌기만 하고 속까지 스미지 않는다. 반대로 너무 오래 절이면 숨이 다 죽어서 아삭한 식감 자체가 사라진다.
기본 재료는 이렇다.
- 알배기 배추 반 포기(약 500g)
- 굵은소금 1큰술(절임용)
- 고춧가루 2큰술, 멸치액젓 1.5큰술
- 다진 마늘 1큰술, 설탕 또는 매실청 1큰술, 통깨 약간
배추를 한입 크기로 썰어 소금을 뿌리고 20~25분 절인 뒤, 중간에 한 번 뒤적여준다. 이 한 번의 뒤적임을 생략하면 아래쪽만 짜고 위쪽은 싱거운 상태로 완성돼버리니 꼭 거치는 게 좋다. 절인 배추는 체에 밭쳐 물기를 가볍게 짜낸 뒤 양념을 넣고 무치는데, 손으로 꾹꾹 누르듯 버무리지 말고 가볍게 뒤집듯 섞어야 배춧잎이 뭉개지지 않는다. 당근이나 쪽파를 채썰어 넣으면 색감도 살고 식감도 더해진다.
완성 직후보다 10분 정도 두었다가 먹으면 양념이 속까지 배어 훨씬 맛있다는 걸 막상 해보면 알게 된다. 액젓 비린내가 걱정되는 사람은 까나리액젓 대신 참치액이나 국간장으로 대체해도 되는데, 이 경우 간이 약해질 수 있으니 소금을 살짝 더 넣어 조절하면 된다.
배추된장국, 순서 하나로 맛이 갈린다
배추된장국은 재료가 단출해서 쉬워 보이지만, 의외로 순서를 틀리면 밍밍하거나 짜게 끝나버리는 국이다. 된장을 물에 바로 풀어 넣고 끓이기 시작하는 경우가 흔한데, 그렇게 하면 된장 특유의 텁텁한 맛이 남아서 뒷맛이 깔끔하지 않다.
순서는 이렇다.
- 멸치와 다시마로 육수 500ml를 우려낸다(급하면 시판 육수팩으로 대체 가능)
- 육수가 끓으면 된장 1.5~2큰술을 체에 걸러 풀어 넣는다
- 배춧잎 150~200g을 손으로 찢어 넣고 중불에서 3~4분 끓인다
- 다진 마늘 반 큰술, 대파, 청양고추 반 개를 넣고 한소끔 더 끓인다
된장을 체에 거르는 과정을 귀찮다고 생략하면 덩어리진 된장이 입에 걸려 식감이 거슬린다. 배추는 투명하게 익으면서 숨이 살짝 죽는 정도가 적당한데, 너무 오래 끓이면 배추 특유의 단맛이 날아가고 물컹해진다. 두부를 깍둑썰어 넣고 싶다면 거의 다 끓었을 때 넣는 편이 낫다. 끓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두부 모서리가 뭉개져서 국물이 탁해지기 때문이다.
국물 간이 심심하다고 된장을 계속 추가하는 건 추천하지 않는다. 짠맛보다 텁텁한 맛이 먼저 올라와서 국 전체의 균형이 무너지기 쉽다. 대신 국간장을 반 큰술씩 추가하면서 간을 맞추면 깔끔하게 마무리된다. 감자나 애호박을 더해도 잘 어울리고, 냉동 새우를 몇 마리 넣으면 감칠맛이 한층 올라간다. 냉장고에 남은 자투리 채소를 정리하기에도 좋은 국이라 자주 끓이게 된다.

배추전, 얇게 두드려야 바삭하다
배추전은 번거로울 것 같지만 막상 해보면 세 레시피 중 가장 손이 덜 간다. 배춧잎 5~6장을 골라 밀대나 칼등으로 줄기 부분을 두세 번 두드려 납작하게 펴는 게 핵심이다. 이 과정을 생략하면 줄기 부분이 두꺼워서 속은 설익고 겉만 타는 전이 나온다.
부침가루 1컵에 물 1컵을 넣어 되직하지 않게 반죽을 만들고, 배춧잎에 소금 간을 살짝 한 뒤 반죽을 앞뒤로 얇게 입힌다. 달군 팬에 식용유를 넉넉히 두르고 중약불에서 앞뒤로 노릇하게 부치면 되는데, 센 불로 급하게 부치면 겉은 타고 속은 설익어버린다. 한 장당 2~3분이면 충분하고, 다 부친 뒤 키친타월에 잠깐 올려 기름을 빼면 느끼함이 한결 줄어든다.
양념장은 간장 2큰술, 식초 1큰술, 고춧가루 약간, 통깨만 섞으면 된다. 새우젓을 찍어 먹는 방식도 꽤 잘 어울리는데, 짭조름한 새우젓의 감칠맛이 기름진 배추전의 느끼함을 깔끔하게 잡아주기 때문이다. 입맛에 따라 골라 먹어보면 의외로 새우젓 쪽에 손이 더 가는 경우가 많다.

세 가지를 한 상에 올리면 왜 더 좋을까
겉절이는 아삭하고 자극적인 맛, 된장국은 구수하고 뜨끈한 맛, 배추전은 고소하고 바삭한 맛이다. 식감과 온도가 전혀 겹치지 않다 보니 세 가지를 한 상에 올려도 물리지 않고 끝까지 숟가락이 간다. 흰 쌀밥 한 공기, 가운데 자리 잡은 노란 배추전, 옆에 놓인 빨간 겉절이, 김이 올라오는 된장국 한 그릇. 이렇게만 떠올려도 평범한 집밥 상차림이 꽤 그럴듯해 보인다.
배추 한 포기로 세 가지를 동시에 준비해도 재료가 거의 남지 않을 만큼 효율적이라는 점도 가을철에 배추 요리를 자주 해 먹게 되는 이유다. 배추를 고를 때는 겉잎이 진한 초록색이고 속이 꽉 찬 것을 고르는 게 좋다. 들었을 때 묵직한 느낌이 드는 배추가 수분이 많고 단맛도 좋은 편이다.
자주 묻는 질문
Q. 겉절이는 냉장 보관하면 며칠까지 먹을 수 있나요?
절인 상태로 바로 무쳐 먹는 겉절이는 숙성 김치와 달리 2~3일 안에 먹는 게 가장 맛있다. 그 이상 지나면 배추에서 물이 나와 식감이 물러지니 한 번에 다 먹을 만큼만 만드는 걸 추천한다.
Q. 된장국에 배추 대신 다른 채소를 써도 되나요?
얼갈이배추나 열무로 대체해도 무방하다. 다만 배추보다 익는 시간이 짧은 채소가 많으니 끓이는 시간을 1~2분 줄이는 게 좋다.
Q. 배추전이 자꾸 눅눅해지는데 이유가 뭔가요?
반죽이 너무 묽거나 불이 약해서 기름 온도가 충분히 오르지 않은 경우가 많다. 중약불에서 기름을 충분히 달군 뒤 부치고, 다 부친 전은 겹쳐 쌓지 말고 식힘망이나 키친타월 위에 펼쳐두면 눅눅해지는 걸 막을 수 있다.
Q. 세 가지 중 한 가지만 먼저 해보고 싶다면 뭐가 제일 쉬운가요?
셋 중 하나만 고르라면 배추전부터 권하고 싶다. 재료가 가장 적고 간도 단순해서 처음 도전하는 사람도 실수할 여지가 적다. 겉절이는 절이는 시간 조절이, 된장국은 된장 거르는 과정이 변수로 작용하는 편이라 두세 번 해보면서 손에 익히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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