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본토에서 3,700킬로미터 떨어진 태평양 한복판, 라노 라라쿠 화산 비탈에는 아직도 땅에서 몸을 다 빼내지 못한 석상 하나가 누워 있다. 높이 21미터, 무게 270톤. 이름은 ‘엘 히간테’. 완성됐다면 이스터섬에서 가장 큰 모아이가 됐을 이 거인은 미완성인 채로 남았다. 섬 전체에 기록된 모아이는 887개. 그중 397개가 바로 이 채석장 안에 몰려 있다. 나머지 절반 가까이는 섬 곳곳으로 옮겨졌고, 실제로 제단(아후) 위에 세워져 완공된 것은 50여 개에 불과하다. 평균 무게 12톤짜리 돌덩어리를 길도 제대로 없던 시절에 사람 힘만으로 수 킬로미터씩 끌고 간 사람들은 대체 누구였을까.
모아이란 무엇인가
모아이는 라파누이 사람들이 13세기부터 16세기 사이, 대략 1250년에서 1500년 사이에 집중적으로 조각한 인물상이다. 화산재가 굳어 만들어진 응회암을 깎아 만들었는데, 대부분 몸통 없이 상반신만 표현되어 있고 눈두덩은 깊고 코는 길쭉하다. 평균 키는 4미터, 무게는 12톤 정도지만 개체 차이가 크다. 조상신이나 부족장의 영혼을 담은 존재로 여겨졌고, 마을을 등지고 바다를 바라보는 게 아니라 반대로 마을 쪽을 바라보게 세워졌다. 조상이 후손을 지켜본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태평양 한가운데, 라파누이 문명
이스터섬은 행정구역상 칠레령이다. 남아메리카 대륙과도, 가장 가까운 유인도인 핏케언섬과도 수천 킬로미터씩 떨어진 이 삼각형 모양의 화산섬에 사람이 처음 정착한 시기는 학자마다 견해가 갈린다. 폴리네시아에서 카누를 타고 건너온 이들이 대략 1200년 전후 정착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인구가 최대 수천 명에서 1만 명 가까이까지 늘어났다는 추정도 있는데, 이 작은 섬에서 이 정도 인구가 대형 석상을 수백 개나 만들고 옮겼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놀랍다. 나무가 울창했던 섬이 왜 훗날 벌거숭이가 됐는지를 두고는 삼림 남벌과 인구 붕괴를 연결짓는 이론도 유명하지만, 최근 고고학계에서는 이 서사에 의문을 제기하는 연구도 적지 않다.
오랜 미스터리, 어떻게 옮겼을까
문제는 단순하다. 바퀴도 없고, 섬에는 대형 동물도 없었다. 채석장인 라노 라라쿠에서 완성된 모아이를 조각한 뒤, 섬 곳곳의 해안 제단까지 최대 18킬로미터를 이동시켜야 했다. 12톤짜리 돌덩어리를, 그것도 무너뜨리지 않고. 유럽인이 처음 섬에 도착한 1722년 부활절 당일 네덜란드 탐험가 야코프 로헤베인이 이 섬을 발견해 ‘이스터섬’이라는 이름을 붙였을 때, 이미 상당수 모아이가 쓰러져 있었다는 기록도 있다. 어떻게 세웠고 어떻게 옮겼는지를 물어볼 대상조차 이미 희미해진 상태였다는 뜻이다.
학계의 여러 가설
통나무 굴림설
가장 오래되고 널리 알려진 가설이다. 통나무를 바닥에 깔고 그 위로 석상을 눕혀 굴리거나, 썰매처럼 만든 구조물 밑에 통나무를 받쳐 끌었다는 주장이다. 노르웨이 탐험가 토르 헤위에르달이 1950년대 실험에서 실제로 이 방식으로 소형 모아이를 이동시키는 데 성공하면서 오랫동안 정설처럼 받아들여졌다. 다만 이 방식대로라면 섬에 있던 야자나무 숲을 대량으로 소비했어야 하고, 실제로 옮긴 거리와 필요한 인력 규모를 계산하면 부담스러운 수치가 나온다는 반론이 계속 나왔다.
카누 사다리설
평행한 나무 레일 두 개를 놓고 그 위에 석상을 얹어 끌었다는 가설도 있다. 카누를 옮기던 방식을 응용했다는 논리인데, 마찰을 줄이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역시 상당한 목재와 인력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통나무 굴림설과 비슷한 한계를 안고 있다.
세워서 걸어갔다는 가설
주민들 사이에 구전되던 이야기는 사뭇 다르다. “모아이가 스스로 걸어서 제자리를 찾아갔다”는 전설이다. 오랫동안 신화 취급을 받았지만, 21세기 들어 이 이야기를 문자 그대로 실험해 본 학자들이 나타났다.
실제 실험으로 증명된 방법
고고학자 칼 리포와 테리 헌트는 섬에 남아 있는 이동 경로의 흔적을 오래 조사했다. 이들이 주목한 건 길의 단면이었다. 썰매를 끌기에 알맞은 평평한 길이 아니라, U자형으로 파인 좁은 길이 발견된 것이다. 평평한 길이라면 썰매나 통나무를 굴리기에 적합하지만, U자형 길은 오히려 무언가를 좌우로 흔들며 앞으로 나아가게 하기에 알맞은 구조였다. 두 사람은 실제 도로에서 발견된 모아이들의 밑면이 D자 모양이고, 앞으로 6도에서 15도가량 기울어져 있다는 점도 확인했다. 세워둔 채로 좌우로 흔들었을 때 넘어지지 않고 안정적으로 움직이도록 설계된 형태라는 해석이 가능했다.

2012년, 두 사람은 실물과 거의 같은 비율로 콘크리트 복제품을 만들었다. 무게 4.35톤짜리 이 모아이 모형에 밧줄 세 가닥을 걸었다. 앞쪽 좌우에서 밧줄을 당겨 좌우로 살짝살짝 흔들고, 뒤쪽에서 균형을 잡는 방식이었다. 18명이 참여한 이 실험에서 석상은 뒤뚱뒤뚱 걷는 것처럼 앞으로 나아갔다. 100미터를 이동하는 데 걸린 시간은 40분. 최근 후속 연구에서는 인원을 15명 수준까지 줄여도 이른바 ‘진자 운동’ 원리로 충분히 걸어갈 수 있다는 결과도 나왔다. 신화 속 표현이 사실은 목격담에 가까웠을 가능성이 여기서 열린 셈이다.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
모든 모아이가 이 방식으로 옮겨졌다고 단정하긴 이르다. 라노 라라쿠 채석장 안에 반쯤 묻힌 채 남은 397개는 애초에 왜 완성 상태로 옮겨지지 못했는지 뚜렷한 설명이 없다. 험한 지형이나 좁은 길에서는 걷는 방식이 통하지 않았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고, 인구가 줄면서 대형 프로젝트를 유지할 노동력 자체가 사라졌을 것이라는 추정도 있다. 붉은 화산암으로 만든 ‘푸카오’라 불리는 모자 형태 장식을 어떻게 머리 위까지 올려 얹었는지도 완전히 규명되지 않았다. 경사로를 이용했으리라는 가설이 유력하지만, 어느 시점에 어떤 도구로 작업했는지는 여전히 추정의 영역이다.
자주 묻는 질문
모아이는 정말 모두 걸어서 옮겨졌나요?
2012년 실험과 이후 연구는 D자형 밑면과 앞으로 기운 자세를 가진 ‘도로용 모아이’가 좌우로 흔들며 이동하기에 적합했다는 점을 보여줬을 뿐이다. 아후 위에 세워진 완성형 모아이는 이런 형태와 다르기 때문에, 마지막 세우기 단계까지 같은 방식이 쓰였는지는 별개의 문제로 남아 있다.
이스터섬 문명이 삼림을 파괴해 스스로 무너졌다는 이야기는 사실인가요?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저서 ‘문명의 붕괴’에서 널리 알린 서사지만, 리포와 헌트를 포함한 일부 연구자들은 섬의 삼림 감소 원인으로 폴리네시아쥐의 유입, 기후 변화, 유럽인 접촉 이후의 질병과 노예 무역 등 복합 요인을 함께 제시한다. 단일 원인으로 단정하기보다는 여러 가설이 경합하는 주제로 보는 편이 정확하다.
모아이의 눈은 원래 저런 빈 눈구멍이었나요?
완공 당시에는 흰 산호와 붉은 화산암 조각으로 눈동자를 넣었다는 흔적이 남아 있다. 지금 관광객들이 보는 텅 빈 눈두덩은 세월이 지나며 눈 장식이 대부분 소실된 결과이고, 일부 복원된 모아이에서는 흰자와 검은 눈동자가 들어간 원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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