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7월 8일 오전, 뉴멕시코주 로즈웰 육군항공대 기지의 공보장교 월터 하우트는 짧은 보도자료 한 장을 지역 언론사에 돌렸다. 제목은 단순했다. “RAAF, 로즈웰 인근 목장에서 비행접시 포획.” 이 문장 하나가 79년째 사그라들지 않는 논쟁에 불을 붙였다. 군이 스스로 “우리는 UFO를 잡았다”고 발표한 유일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다음 날 군은 말을 바꿔 기상관측 기구였다고 정정했지만, 그 24시간의 틈새는 지금까지도 메워지지 않았다.
목장에서 시작된 사건, 그리고 하루 만의 번복
사건의 발단은 그보다 3주 전인 6월 14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로즈웰에서 북서쪽으로 약 120km 떨어진 코로나 인근 목장을 관리하던 윌리엄 우드 브라젤, 흔히 맥 브라젤이라 불리던 목장주는 아들 버넌과 함께 양떼를 몰던 중 넓은 지역에 흩어진 정체불명의 잔해를 발견했다. 고무 조각, 은박지 같은 얇은 금속판, 질긴 종이, 나무 막대기와 테이프가 뒤섞여 있었다. 브라젤은 별일 아니라 여기고 지나쳤다.
그가 다시 이 잔해를 떠올린 건 7월 초, 라디오도 없던 목장을 벗어나 코로나 마을에 나갔다가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비행접시 목격담” 소식을 듣고 나서였다. 7월 7일 로즈웰로 양털을 팔러 나간 브라젤은 셰이브 윌콕스 보안관 사무실에 들러 “이상한 걸 주웠다”고 조심스레 알렸다. 보안관은 이를 인근 로즈웰 육군항공대 기지에 통보했고, 정보장교 제시 마셀 소령이 현장으로 급파됐다.
제시 마셀 소령과 508폭격전대의 개입
마셀은 브라젤과 함께 목장으로 나가 잔해 일부를 수거해 기지로 가져왔다. 이때 기지 사령관 윌리엄 블랜차드 대령의 승인 아래 나온 것이 문제의 보도자료였다. 509폭격전대는 당시 세계에서 유일하게 원자폭탄을 운용하던 부대였고, 그만큼 언론의 관심이 집중돼 있던 곳이었다. 보도자료가 나가자마자 AP통신을 타고 전국에 퍼졌고, 로즈웰 데일리 레코드는 7월 8일자 1면에 “RAAF Captures Flying Saucer On Ranch in Roswell Region”이라는 제목을 걸었다.
소동은 오래가지 않았다. 같은 날 오후, 8공군 사령관 로저 라미 준장이 텍사스주 포트워스 기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잔해가 레이윈 기상관측 기구와 반사판이라고 발표했다. 다음 날 로즈웰 모닝 디스패치는 “군, 로즈웰 비행접시를 부인하다”라는 제목으로 정정 보도를 냈다. 브라젤은 이 소동에 지쳐 “다음에 또 뭘 발견해도 입 다물고 있을 것”이라는 취지의 말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45년의 침묵 끝에 다시 불붙은 논쟁
사건은 그렇게 묻히는 듯했다. 실제로 별다른 조명을 받지 못한 채 30년 넘게 잊혀 있었다. 반전은 1978년에 찾아왔다. 은퇴한 마셀 소령이 UFO 연구가 스탠턴 프리드먼과의 인터뷰에서 “그때 회수한 물체는 지구상 어떤 재질과도 달랐다”고 증언한 것이다. 이 발언이 도화선이 되어 1980년 출간된 책 《로즈웰 사건》에서는 외계인 시신 회수설까지 등장했다. 다만 마셀 본인은 생전 시신을 봤다고 말한 적이 없다는 점은 후대 연구자들 사이에서 반복적으로 지적되는 대목이다.
1995년에는 영국 사업가 레이 산틸리가 “로즈웰에서 회수된 외계인의 부검 영상”이라며 흑백 필름을 공개해 전 세계 방송을 탔다. 시청률은 폭발적이었지만 진위 논란도 뜨거웠다. 2006년 산틸리는 그 영상이 재현 필름이었다고 시인했다. 라즈베리 잼과 양의 뇌, 정육점에서 구한 관절 부위로 만든 소품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 영상은 로즈웰 신화 중 가장 대표적인 조작 사례로 남았다.
공군의 재조사와 프로젝트 모굴
대중적 관심이 커지자 미 공군은 1994년과 1997년 두 차례에 걸쳐 공식 재조사 보고서를 냈다. 결론은 냉전 초기 극비 프로젝트였던 ‘프로젝트 모굴’이었다. 소련의 핵실험을 감지하기 위해 고고도에 마이크로폰과 반사판을 매단 기구 여러 개를 사슬처럼 엮어 띄우는 실험이었는데, 뉴멕시코 앨라모고도 기지에서 발사된 4번 비행체가 실종된 시점이 브라젤의 발견 시점과 겹친다는 것이다. 프로젝트 참여 엔지니어였던 찰스 무어 교수는 1994년 인터뷰에서 목격자들이 묘사한 잔해의 재질과 반사판 형태가 자신이 다뤘던 장비와 정확히 일치한다고 밝혔다.
외계인 목격담에 대해서는 조금 다른 설명이 붙었다. 1956년 인근 기지에서 발생한 실험용 인체모형 낙하 훈련이나, 1950년대 발생한 실제 항공 사고 사망자들의 기억이 수십 년 뒤 뒤섞여 재구성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공군 측 해명이다. 시간이 흐르며 서로 다른 사건의 기억이 하나의 이야기로 합쳐지는 현상은 목격자 증언을 다루는 심리학 연구에서도 흔히 보고되는 패턴이다.


지금의 로즈웰, 관광지가 된 미스터리
공식 설명이 나온 지 30년 가까이 지났지만 로즈웰은 여전히 미국 UFO 문화의 수도로 불린다. 인구 4만 8천 명 남짓한 이 소도시에는 국제 UFO 박물관 연구센터가 자리 잡고 있고, 매년 7월이면 수만 명이 모이는 UFO 페스티벌이 열린다. 맥도날드 간판마저 초록색 외계인 눈 모양으로 바꿔 단 곳이 로즈웰이다. 진위와 별개로, 이 사건이 미국 대중문화에 남긴 흔적은 어느 UFO 목격담보다도 깊고 넓다.
흥미로운 건 목장 잔해의 실물 증거가 지금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마셀이 처음 수거한 조각들은 포트워스로 옮겨진 뒤 행방이 뚜렷하지 않고, 당시 촬영된 사진 속 잔해는 라미 준장이 재배치한 기구 조각이라는 지적이 많다. 원본 잔해와 언론 발표용 잔해가 뒤바뀌었을 가능성 자체가 음모론에 기름을 붓는 또 다른 요인이 됐다.
자주 묻는 질문
로즈웰 사건은 UFO였나, 기구였나?
미 공군의 공식 입장은 프로젝트 모굴 기구의 잔해라는 것이다. 1947년 당시 극비였던 이 프로젝트가 초기에 정확히 설명되지 못하면서 은폐 정황처럼 비쳤고, 그 공백을 외계인 가설이 메운 셈이다. 다만 증거 대부분이 소실된 탓에 완전히 종결된 사안으로 보지 않는 연구자들도 남아 있다.
제시 마셀은 왜 처음에 비행접시라고 말했나?
당시 마셀은 프로젝트 모굴의 존재 자체를 몰랐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처음 보는 재질과 형태의 잔해를 보고 순간적으로 놀라움을 표현한 발언이 보도자료에 그대로 실렸고, 이후 수십 년간 확대 재생산됐다는 것이 다수 역사학자의 해석이다.
외계인 시신 목격담은 어디서 나온 이야기인가?
브라젤이나 마셀의 최초 증언에는 시신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시신 이야기는 1980년대 이후 출간된 책과 증언 재구성 과정에서 덧붙여졌으며, 1995년 부검 영상 사건이 이 이미지를 대중에게 각인시킨 결정적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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