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함 한 척이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가 250마일 떨어진 항구에 다시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으면 누구나 코웃음부터 칠 것이다. SF 영화 예고편에나 나올 법한 설정이니까. 그런데도 이 이야기는 80년 넘게 죽지 않고 살아남아, 지금도 유튜브 댓글창과 커뮤니티 게시판을 돌아다닌다. 바로 “필라델피아 실험”이라 불리는 이야기다. 1943년 10월, 미 해군 구축함 USS 엘드리지가 투명해졌다가 순식간에 다른 항구로 이동했다는 주장, 그리고 그 배에 타고 있던 선원 일부가 갑판이나 벽에 몸이 녹아 붙었다는 섬뜩한 후일담까지 딸려 있다.

1943년 10월, 필라델피아 해군 조선소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비밀 실험이라고 하면 뭔가 거창한 그림을 떠올리기 쉽지만, 무대는 의외로 평범한 곳이다.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해군 조선소.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시기, 미 해군은 독일 U보트의 자기 감응 어뢰로부터 함선을 보호하기 위해 여러 방식의 대응책을 연구하고 있었다. 실제로 이 시기 해군이 진행한 연구 중 하나가 ‘디가우징(degaussing)’이라는 기술이었다. 선체 둘레에 전선을 감고 전류를 흘려 배가 만들어내는 자기장을 상쇄시키는 방식으로, 목적은 어뢰가 배의 자기장을 인식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배를 눈에 안 보이게 만드는 게 아니라, 자기 센서에 안 걸리게 만드는 기술이라는 뜻이다.
이 정도만 보면 그리 특별할 것 없는 전시 군사연구처럼 들린다. 실제로도 그랬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12년 뒤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덧붙여졌다는 점이다.
소문은 어디서 시작됐나 – 칼 알렌의 편지
전설이 처음부터 이렇게 시작됐을 리 없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뜻밖에도 출발점은 편지 한 통이었다. 1955년, 천문학자이자 아마추어 UFO 연구가였던 모리스 K. 제섭이라는 인물이 이상한 우편물을 받는다. 보낸 사람은 칼 메러디스 알렌(가명 칼로스 알렌데)이라는 전직 상선 선원이었다. 알렌은 제섭이 얼마 전 출간한 책의 여백에 손글씨로 빼곡히 주석을 달아 되돌려 보냈는데, 그 내용이 놀라웠다. 1943년 10월 자신이 상선 SS 앤드류 퍼시라는 배에 타고 있었고, 멀리서 필라델피아 해군 조선소의 비밀 실험을 목격했다는 것이었다.
편지 속 주장 – 순식간에 사라진 배
알렌의 주장에 따르면 그날 USS 엘드리지는 강력한 전자기장 발생 장치를 가동한 순간 초록빛 안개에 휩싸이며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뒤, 무려 250마일 이상 떨어진 버지니아주 노퍽 항구 앞바다에 모습을 드러냈다가 다시 필라델피아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말이 되나 싶지만, 알렌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더 자극적인 디테일을 덧붙였다. 장치를 끄자 일부 선원은 갑판이나 격벽에 신체 일부가 융합된 채 발견됐고, 몇몇은 실성했으며, 심지어 순간이동 부작용으로 벽을 통과해 다른 시공간을 오갔다는 후일담까지 나왔다.
황당하게 들리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도 제섭은 이 편지를 진지하게 받아들였고, 이후 해군 연구청(ONR)의 일부 관계자가 이 주석 달린 책을 다시 인쇄해 배포하면서 이야기는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다. 정부 기관이 관여했다는 사실 자체가 오히려 “뭔가 있다”는 인상을 심어준 셈이다.

해군 기록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쯤에서 가장 확실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실제 USS 엘드리지의 항해 기록은 어떻게 남아 있을까. 결과는 음모론자들에게 그리 반갑지 않다.
그 시각 엘드리지는 필라델피아에 없었다
해군이 보관한 항해일지에 따르면, USS 엘드리지는 1943년 9월 27일 취역한 뒤 그해 가을 내내 바하마 해역에서 신조함 적응훈련(shakedown)을 수행 중이었다. 다시 말해 알렌이 목격했다고 주장하는 10월의 그 시점에 엘드리지는 필라델피아 앞바다가 아니라 카리브해 인근에 있었다는 뜻이다. 의외로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야기의 핵심 뼈대가 흔들린다. 배가 애초에 그 장소에 없었다면, 투명화든 순간이동이든 논할 대상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디가우징 실험과의 혼동
그렇다면 이런 이야기가 어디서 튀어나왔을까. 해군 역사유산사령부(Naval History and Heritage Command)를 비롯한 여러 연구자들은 실제로 존재했던 디가우징 실험이 와전되고 부풀려졌을 가능성을 유력하게 본다. 앞서 말했듯 디가우징은 배를 자기 센서에서 ‘안 보이게’ 하는 기술이지, 사람 눈이나 레이더에서 사라지게 하는 기술이 아니다. 그런데도 이 두 개념이 뒤섞이고, 여기에 테슬라 코일이나 통일장 이론 같은 당대 유행하던 과학 용어가 양념처럼 얹히면서 지금 우리가 아는 형태의 전설로 진화한 것으로 보인다.
해군 연구청은 1996년 공식 자료를 통해 “ONR은 1943년이나 그 이후 어떤 시기에도 투명화에 관한 조사를 진행한 적이 없다. 현재의 과학 지식에 비추어 볼 때 ONR 소속 과학자들은 그런 실험이 SF 영화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고 본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부가 직접 나서서 부인한 사례라는 점에서 꽤 이례적인 대응이었다.
칼 알렌은 누구였나
그렇다면 이 모든 이야기를 시작한 칼 알렌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흥미롭게도 알렌의 가족들조차 그를 “타고난 허풍쟁이(master leg-puller)”로 기억한다는 증언이 여러 자료에 남아 있다. 그는 시기별로 진술을 계속 바꿨고, 목격 장소나 세부 정황도 편지를 쓸 때마다 조금씩 달라졌다.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알렌이 실제로 상선을 탄 경험은 있었을지 몰라도, 필라델피아 실험에 관한 구체적 목격담 자체는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한 사람의 손편지 하나가 이렇게 오래, 이렇게 널리 퍼질 수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더 놀랍다면 놀랍다.
회의론자들의 반박, 그리고 이야기가 계속 살아남는 이유
회의적인 연구자들이 지적하는 지점은 대체로 비슷하다. 첫째, 순간이동이나 투명화를 뒷받침할 만한 1940년대 수준의 물리학적 근거가 전혀 없다. 둘째, 편지 원본 외에는 목격자 증언이나 사진, 공식 문서 같은 2차 자료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셋째, 이후 등장한 여러 “추가 목격자”들 대부분이 사후에 확인이 불가능하거나 진위가 의심되는 경우였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가 꾸준히 회자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전쟁이라는 시대적 배경, 정부의 비밀연구라는 소재, 그리고 과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미스터리라는 조합 자체가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로즈웰 사건이나 여러 정부 은폐론이 그렇듯, 진위 여부와 별개로 “혹시 모른다”는 여지가 이야기를 계속 살아 있게 만든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현재까지 공개된 항해 기록과 해군의 공식 입장, 그리고 알렌 개인의 신뢰도를 종합했을 때 필라델피아 실험은 실제 사건이라기보다 도시전설에 가깝다는 쪽에 무게가 실린다. 다만 완전히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실제 존재했던 디가우징 연구라는 씨앗에 상상력과 냉전 시대의 비밀주의가 덧붙어 자라난 결과물로 보는 시각이 지금으로선 가장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자주 묻는 질문
필라델피아 실험은 완전히 조작된 이야기인가요?
80년 가까이 회자된 이야기니 뭔가 근거는 있지 않겠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런데도 “100% 조작”이라 단정하기는 조심스럽지만, USS 엘드리지가 사건 발생 시점에 필라델피아가 아닌 바하마 해역에 있었다는 항해 기록, 그리고 이야기의 출처가 된 칼 알렌의 진술이 시기마다 달라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금까지 알려진 형태의 순간이동·투명화 일화는 사실로 보기 어렵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디가우징 실험과 필라델피아 실험은 같은 것 아닌가요?
이름이 비슷하게 오르내리다 보니 같은 실험이라 오해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디가우징은 선체의 자기장을 상쇄해 자기 감응 어뢰나 기뢰로부터 배를 보호하는 실제 군사기술로, 눈에 보이지 않게 만드는 것과는 무관하다. 예를 들어 당시 조선소 인근 주민이 전선이 감긴 배와 낯선 장비를 목격했다면, 그것은 순간이동 실험이 아니라 이 디가우징 작업이었을 가능성이 훨씬 크다.
영화나 다큐멘터리에 나온 목격자 증언은 왜 신뢰하기 어려운가요?
방송에 나와서 눈물까지 글썽이며 증언한다면 믿을 만하지 않겠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1984년 영화 개봉 이후 “나도 그때 봤다”는 식의 추가 증언이 여럿 등장했지만, 신원 확인이 어렵거나 진술 내용이 기존 편지와 충돌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정 인물이 방송에 출연해 구체적인 날짜와 정황을 이야기하더라도, 그것이 공식 기록이나 제3의 독립적 증거로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하나의 진술 이상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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