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0km를 이동한 6.6톤 돌 — 스톤헨지가 아직 풀지 못한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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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4년, 한 지질학자가 스톤헨지 한가운데 누워 있는 6톤짜리 회색 돌 — 흔히 ‘제단석(Altar Stone)’이라 불리는 그 돌에서 얇은 조각 하나를 잘라냈다. 그 조각은 이후 180년 가까이 런던 자연사박물관 서랍 속에 조용히 보관돼 있었다. 그런데 2024년 8월, 커틴대학교(Curtin University) 연구진이 그 낡은 조각을 현미경 아래 다시 올려놓으면서 이야기가 완전히 뒤집혔다. 스톤헨지에서 가장 무거운 축에 속하는 이 돌이, 놀랍게도 750km 넘게 떨어진 스코틀랜드 북동부에서 왔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100년 넘게 믿어온 ‘웨일스 출신’이라는 정설이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영국 솔즈베리 평원에 서 있는 이 거석 유적은 이미 유네스코 세계유산이고, 매년 수십만 명이 다녀가는 관광지다. 그런데도 정작 누가, 언제, 왜 만들었는지는 지금도 완전히 합의되지 않았다. 미신처럼 들릴 수 있지만, 아직도 어떤 다큐멘터리에서는 외계인이나 마법사 멀린 이야기를 진지하게 꺼낸다. 실제 고고학은 훨씬 흥미롭다. 최근 몇 년 사이 지질학, 방사성탄소연대측정, 천문학 관측까지 동원되면서 스톤헨지에 대한 그림이 상당히 구체적으로 다시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흐린 하늘 아래 솔즈베리 평원에 서 있는 스톤헨지 전경

건설 시기별로 보면 스톤헨지는 하나의 ‘공사’가 아니다

스톤헨지를 하루아침에, 혹은 한 세대 만에 세운 단일 프로젝트로 생각하기 쉽다.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최소 1,500년에 걸쳐 여러 단계로 나뉘어 지어졌다. 첫 삽을 뜬 건 기원전 약 3000년경으로 추정된다. 사슴뿔로 만든 곡괭이로 지름 약 110m의 원형 도랑과 둑을 파낸 흔적이 남아 있고, 그 안쪽에는 오브리 구멍(Aubrey Holes)이라 불리는 56개의 구덩이가 원을 그리며 배치돼 있었다.

진짜 돌이 세워지기 시작한 건 그로부터 몇백 년 뒤다. 기원전 2900년에서 2400년 사이, 지름 2m가 채 안 되는 ‘블루스톤(bluestone)’ 무리가 먼저 도착했다. 이 돌들의 출처는 2015년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의 마이크 파커 피어슨(Mike Parker Pearson) 교수 연구팀이 웨일스 남서부 프레셀리 언덕(Preseli Hills)의 크레이그 로스이펠린과 칸 고에독 채석장으로 특정했다. 직선거리로 약 225km. 바퀴도, 말도 없던 시대에 그 정도 거리를 옮겼다는 사실만으로도 의외로 놀랍다.

사르센석(sarsen stone)으로 불리는 거대한 회색 사암 기둥 — 우리가 흔히 사진으로 보는 그 육중한 삼석탑(trilithon) 구조물 — 은 기원전 2500년경에야 자리를 잡았다. 무게가 최대 25톤에 이르는 이 돌들의 출처는 오랫동안 미스터리였는데, 2020년 브라이튼대학교의 데이비드 내시(David Nash) 교수가 X선 형광분석으로 스톤헨지에서 불과 25km 떨어진 웨스트 우즈(West Woods) 숲을 원산지로 지목했다. 가까운 곳에서 온 돌이라 별문제 없어 보이지만, 25톤짜리 바위를 25km 끌고 오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2024년에 뒤집힌 100년의 정설 — 스코틀랜드에서 온 제단석

가장 극적인 반전은 앞서 언급한 제단석 이야기다. 스톤헨지 중심부에 수평으로 눕혀진 채 다른 돌들에 눌려 있는 이 6.6톤짜리 사암은, 20세기 내내 웨일스산으로 분류돼 있었다. 그런데 커틴대학교의 앤서니 클라크(Anthony Clarke) 연구팀이 국제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발표한 논문에서, 돌 속 지르콘과 아파타이트 광물의 연대를 분석한 결과 웨일스 지질과는 전혀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대신 스코틀랜드 북동부 오크니 제도 인근의 오르카디안 분지(Orcadian Basin) 지층과 거의 정확히 일치했다.

직선거리로 계산해도 700km가 넘는다. 신석기시대 유럽 전체를 통틀어 이만큼 먼 거리를 이동한 거석 사례는 아직 보고된 적이 없다. 여전히 의문인 건, 왜 하필 그렇게 멀리서 돌을 가져왔느냐는 점이다. 가까운 곳에도 비슷한 사암은 얼마든지 있었다. 연구팀은 이것이 단순한 건축 자재 수급이 아니라, 브리튼섬 북쪽과 남쪽 공동체를 잇는 상징적 행위였을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제기한다 — 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추정이지, 확정된 결론은 아니다.

스톤헨지의 거대한 사르센석 기둥을 가까이서 촬영한 모습

빙하가 옮겼다는 설, 아직도 유효할까

돌의 출처가 밝혀졌다고 해서 ‘어떻게 옮겼는지’까지 자동으로 풀리는 건 아니다. 오랫동안 일부 지질학자들은 빙하가 자연스럽게 이 돌들을 브리튼섬 남부까지 밀고 왔을 것이라 주장해왔다. 얼핏 그럴듯하게 들린다. 사람이 수 톤짜리 돌을 수백 km씩 끌고 다녔다는 쪽이 오히려 더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커틴대학교 연구진이 뒤이어 내놓은 후속 연구는 빙하설에 힘을 실어주지 않았다. 오르카디안 분지에서 솔즈베리 평원까지 이어지는 경로에서 같은 계열의 표류 암석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이 결정적이었다. 빙하가 실어 날랐다면 중간중간 흔적이 남아야 정상인데, 그런 흔적이 없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학계 대다수는 지금 뗏목이나 썰매, 통나무 굴림대를 이용한 인력 운반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상상만 해도 수백 명이 동원됐을 그 작업 규모가 그려진다.

왜 만들었을까 — 달력인가, 무덤인가, ‘통합’의 상징인가

목적을 둘러싼 논쟁은 출처 논쟁보다 훨씬 오래됐고, 지금도 진행형이다. 가장 널리 알려진 가설은 천문 관측소 역할이다. 스톤헨지의 축은 하지의 일출과 동지의 일몰 방향과 정확히 맞물린다. 우연으로 치부하기엔 정밀도가 지나치게 높다. 매년 6월 21일 전후로 영국 잉글리시 헤리티지(English Heritage)가 하지 일출 행사를 무료로 개방하는데, 최근 몇 년 기준으로 약 1만 명 안팎이 새벽부터 몰려든다.

동시에 이곳은 무덤이기도 했다. 2018년 UCL의 크리스티 윌리스(Christie Willis) 연구팀이 오브리 구멍에서 나온 화장 유골 25구를 재분석한 논문을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츠(Scientific Reports)에 발표했는데, 동위원소 분석 결과 일부 유골이 웨일스 서부 출신일 가능성이 제기됐다. 스톤헨지는 단순한 관측 장치가 아니라, 먼 지역 공동체가 함께 참여한 매장지였을 수 있다는 뜻이다.

2024년 말 파커 피어슨 교수팀이 학술지 아키올로지 인터내셔널(Archaeology International)에 발표한 논문은 조금 다른 각도를 제시한다. 당시 브리튼섬 원주민 신석기 공동체가 유럽 대륙에서 건너온 새로운 이주민 집단과 마주하면서, 여러 지역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통합 프로젝트’로 스톤헨지를 세웠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스코틀랜드산 제단석과 웨일스산 블루스톤을 한자리에 모아놓은 것 자체가, 섬 전체를 상징적으로 연결하려는 의도였을 수 있다는 해석이다.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이 역시 여러 가설 중 하나일 뿐, 스톤헨지 연구자들 사이에서 만장일치로 받아들여진 결론은 아니다.

2025년의 특별한 손님 — 18.6년 만에 돌아온 ‘대정지’

해와 달 모두와 연결된 유적이라는 근거는 또 있다. 달은 18.6년 주기로 뜨고 지는 위치가 극단으로 벌어지는 ‘대정지(major lunar standstill)’ 현상을 겪는데, 가장 최근 주기가 2024~2025년에 걸쳐 나타났다. 옥스퍼드대, 레스터대, 본머스대 연구진과 잉글리시 헤리티지, 왕립천문학회가 공동으로 스톤헨지 외곽의 ‘스테이션 스톤(station stones)’ 네 개가 이 극단적인 달의 위치와 정렬되는지를 현장에서 직접 관측했다. 18.6년에 한 번뿐인 기회라 여러 세대에 걸쳐 이 정렬을 의도적으로 설계했는지, 아니면 우연인지는 여전히 논쟁 중이다.

노을 지는 하늘을 배경으로 한 스톤헨지의 실루엣

그래도 여전히 풀리지 않은 것들

돌의 출처가 상당 부분 밝혀졌다고 해서 미스터리가 끝난 건 아니다. 먼저, 바퀴도 없고 큰 짐수레 끄는 가축도 흔치 않던 신석기 브리튼섬에서, 6.6톤짜리 돌을 750km나 옮긴 구체적인 물류 방식은 아직도 재현 실험 수준에 머물러 있다. 두 번째로, 왜 굳이 그렇게 멀리서 돌을 가져왔는지에 대한 확실한 이유는 없다. 상징성 때문이라는 해석은 설득력이 있지만 증거로 완전히 입증된 건 아니다. 세 번째로, 정확히 어떤 의식이 이곳에서 치러졌는지는 문자 기록이 전혀 없는 시대라 영원히 완전한 답을 찾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의외로 이런 근본적인 질문들일수록 답이 가장 늦게, 혹은 끝내 나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비슷한 갈증을 느낀다면 태평양 한가운데 세워진 거석들 이야기도 함께 볼 만하다 — 이스터섬 모아이 석상, 아직도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 3가지 도 스톤헨지 못지않게 ‘누가 왜 옮겼는가’라는 질문을 남긴 유적이다.

자주 묻는 질문

스톤헨지는 정말 드루이드가 만들었나요?

아니다. 스톤헨지 건설은 기원전 3000년경 시작해 기원전 1500년경 마무리됐다고 보는 게 정설인데, 드루이드는 철기시대인 기원전 800년 무렵에야 브리튼섬에 등장한 켈트족 사제 집단이다. 시간차가 최소 700년 이상 벌어진다. 이 오해는 17세기 영국 골동품 연구가 존 오브리(John Aubrey)가 처음 제기한 뒤, 18세기 윌리엄 스터클리(William Stukeley) 같은 학자들이 대중화시키면서 굳어졌다. 실제로 스톤헨지를 지은 사람들은 드루이드보다 훨씬 이전, 문자 기록조차 남기지 않은 신석기 및 초기 청동기시대 공동체였다.

외계인이나 초자연적 힘이 스톤헨지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던데, 근거가 있나요?

그럴듯하게 들릴 수 있지만, 이는 과학적으로 뒷받침되지 않는 대중적 가설일 뿐이다. 20세기 중반 이후 일부 대중서와 다큐멘터리가 ‘인간의 기술로는 불가능하다’는 전제로 외계 개입설을 퍼뜨렸는데, 실제 실험고고학 연구들은 통나무 굴림대와 밧줄, 목재 지렛대만으로 25톤급 돌을 옮기고 세우는 게 충분히 가능하다는 걸 여러 차례 재현해 보였다. 발굴로 확인된 채석장 흔적, 도구 자국, 운반 경로상의 정황 증거까지 겹치면서, 학계에서는 인간이 직접 만들었다는 데 이견이 거의 없다. 다만 정확한 조직 방식과 동원 인력 규모는 여전히 추정치 수준이라는 점은 밝혀둘 필요가 있다.

여름 하지에 스톤헨지에 가면 실제로 무엇을 볼 수 있나요?

매년 6월 21일 전후 새벽, 잉글리시 헤리티지는 평소 유료 입장인 스톤헨지 안쪽 원형 구역까지 무료로 개방한다. 해가 뜨는 순간 ‘힐 스톤(Heel Stone)’이라 불리는 바깥쪽 돌 위로 태양이 걸리는 정렬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데, 최근 몇 년 기준 새벽 시간대에만 약 1만 명 안팎이 현장을 찾는다. 다만 날씨가 흐리면 해돋이 자체를 못 볼 수도 있다는 점, 대중교통이 끊기는 새벽 시간이라 사전에 이동 수단을 확인해야 한다는 점은 미리 알아두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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