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로즈웰 UFO 사건, 그날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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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7월 4일 밤, 뉴멕시코 코로나 근처 목장에 천둥이 쳤다. 다음날 아침 목장 관리인 윌리엄 ‘맥’ 브래즐은 양 떼를 살피러 나갔다가 밭 한가운데 흩어진 잔해 더미와 마주쳤다. 폭이 좁고 반짝이는 조각들이 반경 200미터 넘게 흩뿌려져 있었다. 은박지처럼 얇은데 손으로 아무리 구겨도 이내 원래대로 펴지는 소재, 성냥개비 굵기인데 도끼로 내리쳐도 흠집 하나 안 나는 막대, 그리고 표면에 새겨진 낯선 무늬까지. 당시엔 알루미늄 호일조차 미국 가정에 막 보급되기 시작하던 시절이라, 브래즐 입장에서는 이게 지구상에 있는 소재가 맞나 싶었을 법하다. 그런데도 그는 별일 아니겠거니 하고 며칠을 그냥 뒀다. 라디오에서 ‘비행접시’ 얘기가 연일 나오지 않았다면 아마 신고도 안 했을 거다.

그 며칠 전인 6월 24일, 워싱턴주 상공에서 케네스 아놀드라는 민간 조종사가 접시 모양으로 튕겨 날아가는 물체 9개를 목격했다고 언론에 알렸다. 이 한 건의 목격담이 미국 전역에 ‘플라잉 소서’ 열풍을 일으켰다. 브래즐은 이웃과의 술자리에서 그 얘기를 듣고서야 자기 밭에 떨어진 잔해가 심상치 않을 수도 있겠다 싶었던 모양이다. 7월 7일, 그는 잔해 조각을 챙겨 로즈웰로 나가 보안관 조지 윌콕스를 찾아갔다.

“비행접시를 포획했다” — 24시간짜리 특종

윌콕스는 곧바로 로즈웰 육군항공대(RAAF)에 연락했다. 정보장교 제시 마셀 소령이 현장에 나가 트럭 짐칸 하나를 채울 만큼의 잔해를 수거해 기지로 가져왔다. 그런데 여기서 좀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기지 공보장교였던 월터 하우트 중위가 7월 8일, 사령관 윌리엄 블랜차드 대령의 승인 아래 보도자료를 냈는데 내용이 파격적이었다. “로즈웰 인근 목장에서 비행접시를 회수했다”는 것. 이 보도자료는 AP통신을 타고 순식간에 퍼졌고, 지역지 로즈웰 데일리 레코드는 그날 “RAAF Captures Flying Saucer On Ranch in Roswell Region”이라는 헤드라인을 1면에 박았다.

군이 스스로 “우리가 외계 비행체를 잡았다”고 발표했다는 게 언뜻 믿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런데 당시 ‘플라잉 소서’는 지금처럼 외계인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정체불명 비행물체 전반을 가리키는 그해 여름 한정 유행어에 가까웠다. 하우트 본인도 훗날 인터뷰에서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쓴 표현이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다만 결과적으로 이 한 줄짜리 보도자료가 79년째 이어지는 소동의 방아쇠가 됐다.

뉴멕시코 사막 위로 펼쳐진 별이 가득한 밤하늘

포트워스에서 뒤집힌 발표

그럼 이 소동은 왜 다음날 바로 진화됐을까. 잔해는 그날 오후 텍사스 포트워스에 있는 제8공군 사령부로 옮겨졌고, 사령관 로저 라미 준장이 직접 기자들 앞에 섰다. 그는 바닥에 펼쳐놓은 잔해를 가리키며 “이건 기상관측용 기구와 레이더 반사판일 뿐”이라고 정정했다. 사진기자들이 찍은 사진 속에서 마셀 소령은 찌그러진 은박지 조각을 든 채 어색하게 웃고 있는데, 이 사진은 지금도 로즈웰 관련 자료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이미지 중 하나다.

발표가 하루 만에 뒤집히니 의심이 안 생길 수가 없다. 실제로 마셀은 수십 년 뒤 인터뷰에서 “포트워스에 있던 잔해는 우리가 목장에서 수거한 것과 달랐다”는 취지의 말을 남겼다. 진짜 증거를 빼돌리고 가짜 기상기구 잔해로 바꿔치기했다는 의심이 여기서 출발한다. 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마셀 개인의 회고이고, 같은 기지에 있던 다른 관계자들의 증언과는 어긋나는 부분도 있다.

47년 뒤에야 나온 답, 프로젝트 모굴

그렇다면 그 잔해의 정체는 결국 뭐였을까. 답이 나오기까지 오래 걸렸다. 1994년, 뉴멕시코 하원의원 스티븐 시프가 정부회계감사원(GAO)에 조사를 요청했고, 이듬해 공군은 ‘로즈웰 보고서: 사실과 허구’라는 문서를 통해 실체를 공개했다. 잔해의 정체는 ‘프로젝트 모굴’이라는 극비 계획의 일부였다. 소련이 핵실험을 하면 그 충격파를 고고도에서 포착하겠다는 목적으로, 뉴욕대 연구진이 앨러모고도 기지에서 풍선 수십 개를 350미터 넘는 긴 줄에 일렬로 매달아 띄웠고, 그 줄 곳곳에 마이크와 레이더 반사판, 소리 굽쇠 모양의 금속 부품이 달려 있었다. 상공에서 보면 거대한 연 줄에 은색 마름모가 줄줄이 걸린 모습이었다고 하니, 사막에 추락해 흩어졌을 때 목장 잔해가 어떤 형태였을지 짐작이 간다. 1947년 6월 4일 발사된 ‘4번 비행체’가 실종된 시점과 위치가 브래즐 목장의 잔해 발견 시점과 얼추 맞아떨어진다.

기상관측기구치고는 은폐가 너무 요란하지 않았냐고 물을 수 있다. 그런데 소련의 첫 핵실험은 1949년에야 이뤄졌고, 그전까지 미군은 이 탐지 계획 자체를 극비로 묶어뒀다. 평범한 기상기구라면 굳이 발표를 번복할 이유가 없지만, 냉전 초기 소련 핵개발 감시 계획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군이 숨긴 건 외계인이 아니라 소련을 감시하던 자기네 장비였다는 뜻이다.

잔해는 풀렸는데, ‘외계인 시신’은 왜 따라붙었나

잔해의 정체가 밝혀졌다고 로즈웰 논쟁이 끝난 건 아니다. 오히려 지금까지도 사람들을 붙잡는 건 잔해가 아니라 시신 목격담 쪽이다. 1997년 공군은 ‘로즈웰 보고서: 케이스 클로즈드’라는 후속 보고서를 내면서 이 부분을 정리했다. 1950년대 미군은 낙하산 안전성을 시험하려고 사람 크기의 인체모형(anthropomorphic dummy)을 고고도 기구에서 투하하는 실험을 반복했는데, 이 인형들의 모습이 훗날 목격담에서 ‘왜소하고 매끈한 피부의 시신’으로 재구성됐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1956년 로즈웰 인근에서 실제로 발생한 항공기 추락사고 희생자들의 기억이 겹쳐졌을 가능성도 함께 언급됐다.

기억이 그렇게 쉽게 뒤섞이나 싶겠지만, 목격담 상당수가 사건 30~40년 뒤에야 채록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주 허무맹랑한 설명은 아니다. 다만 이 인체모형 실험은 1950년대 것이라 1947년 사건과 시점이 10년 가까이 어긋난다는 지적도 있어서, 공군 스스로도 완벽한 설명은 아니라는 취지로 물러선 적이 있다. 목격자 증언과 공식 조사 결과 사이의 이 틈이, 로즈웰이 여태 완전히 닫힌 사건이 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 뉴멕시코의 황량한 사막 지형

왜 이렇게까지 커졌나

사건 직후엔 사실 금방 잊혔다. 1978년까지는 그랬다. 핵물리학자 스탠턴 프리드먼이 은퇴한 제시 마셀을 인터뷰하면서 이야기가 다시 세상에 나왔고, 1980년 찰스 벌리츠와 윌리엄 무어가 쓴 책 ‘로즈웰 사건’이 베스트셀러가 되며 불이 붙었다. 여기에 결정타를 하나 더 얹은 게 1995년 레이 산틸리가 공개한 ‘외계인 부검’ 영상이었다. 흑백 필름 속에서 의료진이 왜소한 시신을 해부하는 장면은 전 세계 방송을 탔지만, 산틸리는 2006년 상당 부분이 재연 촬영이었다고 시인했다.

그럼 증언들이 다 지어낸 얘기인가 하면 그렇게만 보기도 애매하다. 2005년 세상을 뜬 하우트 전 중위가 죽기 전 봉인해둔 진술서가 2007년 공개되면서 다시 논쟁이 불붙었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 그는 자신이 격납고에서 잔해와 함께 사람 형태가 아닌 시신을 직접 봤다고 주장했다. 이게 사실이라 단정할 근거는 없지만, 애초에 그 보도자료를 직접 썼던 당사자의 유언이라는 점에서 무게감 있게 받아들여지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 로즈웰의 공식 입장은

그렇다면 79년이 지난 지금, 공식적인 결론은 무엇일까. 미 공군의 대답은 한결같다. 잔해는 프로젝트 모굴의 고고도 기구, 시신 목격담은 인체모형과 사고 희생자에 대한 기억이 뒤섞인 결과. 외계 비행체나 생명체를 회수했다는 근거는 확인된 바 없다는 입장을 지금도 유지하고 있다. 다만 정부가 한 번 말을 바꾼 전례가 있다 보니, 이 공식 설명 역시 완전히 못 미더워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아이러니한 건 로즈웰이라는 도시 자체는 이 논쟁 덕에 완전히 다른 도시가 됐다는 점이다. 인구 4만 명 남짓한 이 사막 도시엔 옛 극장 건물을 개조한 UFO 박물관 겸 연구센터가 들어섰고, 메인 스트리트 가로등마다 외계인 눈 모양 장식이 달려 있다. 매년 7월 초 사건 기념 주간이면 ‘로즈웰 UFO 페스티벌’에 코스튬을 갖춰 입은 방문객들이 전 세계에서 몰려든다. 진실이 뭐였든, 그날 밤 사막에 떨어진 은박지 조각 하나가 도시 하나의 정체성을 통째로 바꿔놓은 셈이다.

별이 쏟아지는 사막 밤하늘 아래 실루엣

로즈웰만 이런 게 아니다. 페루 사막에 새겨진 나스카 라인 미스터리도, 600년 넘게 아무도 못 푼 보이니치 문서도, 결국은 ‘증거는 있는데 해석은 갈린다’는 같은 구조를 갖고 있다. 사람들이 미스터리에서 좀처럼 눈을 못 떼는 이유가 다 비슷한 셈이다.

자주 묻는 질문

Q. 로즈웰에서 정말 외계인 시신이 나왔나요?
공식 조사 결과로는 확인된 바 없다. 1997년 공군 보고서는 시신 목격담이 낙하산 실험용 인체모형과 별개의 항공사고 희생자에 대한 기억이 뒤섞인 결과라고 설명한다. 다만 이 설명이 모든 증언을 완벽히 해명하지는 못해서, 음모론 진영에서는 여전히 받아들이지 않는다.

Q. 정부가 뭔가 숨긴 건 사실인가요?
그렇다. 다만 숨긴 대상은 외계 비행체가 아니라 소련 핵실험을 감시하던 극비 풍선 프로그램, 프로젝트 모굴이었다. 냉전 초기 군사 기밀이었기 때문에 1994년까지 공개되지 못했다.

Q. 왜 처음엔 “비행접시”라고 발표했나요?
당시 ‘플라잉 소서’는 외계인이라기보다 정체불명 비행물체를 뜻하는 유행어에 가까웠다. 현장 지휘관의 승인 아래 성급하게 보도자료가 나갔고, 상급 부대에서 하루 만에 정정하면서 오히려 의혹을 키운 사례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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