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7월 8일 오전, 뉴멕시코주 로즈웰 육군 항공대(Roswell Army Air Field) 공보장교 월터 하우트(Walter Haut)는 짧은 보도자료 한 장을 지역 언론에 돌렸다. 내용은 몇 줄뿐이었다. “제509폭격전대 정보부대가 로즈웰 인근 목장에서 비행접시 한 대를 회수했다.” 다음 날 로즈웰 데일리 레코드는 “RAAF Captures Flying Saucer On Ranch in Roswell Region”이라는 제목을 1면에 실었다. 그리고 딱 하루 뒤, 같은 군은 말을 바꿨다. 그 잔해는 기상 관측용 기구였다고.
세계 유일의 원자폭탄 투하 부대가 주둔하던 기지에서 나온 발표가 하루 만에 뒤집힌 이 사건은, 8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UFO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몇 년 전 히스토리 채널 다큐멘터리를 우연히 보다가 이 사건에 빠져든 적이 있는데, 볼 때마다 새로운 디테일이 튀어나오는 게 신기했다. 목장 위치 하나만 해도 자료마다 조금씩 다르게 서술돼 있을 정도다.
1947년 6월, 브래즐의 목장에서 시작된 일
사건의 시작은 로즈웰이 아니라 로즈웰에서 북서쪽으로 약 120km 떨어진 코로나(Corona) 근처의 한 목장이다. 이곳에서 일하던 목장 관리인 윌리엄 “맥” 브래즐(William “Mac” Brazel)은 6월 중순 어느 날, 양떼를 몰다가 넓은 지역에 흩어진 이상한 잔해를 발견했다. 은박지 같은 얇은 금속 조각, 가늘고 질긴 막대, 접착테이프처럼 보이는 조각들이 수백 미터에 걸쳐 널려 있었다고 한다.
브래즐은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잔해 일부를 주워 창고에 던져뒀다. 그런데 7월 초, 마을에 나갔다가 최근 미국 전역을 휩쓴 “비행접시” 목격담 소식을 듣게 됐다. 자신이 본 것이 그 비행접시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로즈웰의 카운티 보안관 조지 윌콕스(George Wilcox)를 찾아갔다. 7월 7일의 일이다.
제시 마셀 소령이 도착하다
윌콕스 보안관은 곧바로 인근 로즈웰 육군 항공대에 연락했다. 당시 이 기지에는 제509폭격전대(509th Bomb Group)가 주둔하고 있었는데, 인류 역사상 최초로 원자폭탄을 투하한 바로 그 부대였다. 기지 정보장교 제시 마셀(Jesse Marcel) 소령과 방첩대(CIC) 소속 셰리든 캐빗(Sheridan Cavitt) 대위가 현장으로 파견됐다.
마셀은 훗날 여러 인터뷰에서 잔해의 이상함을 강조했다. 얇은 금속 조각은 손으로 구겨도 원래 모양으로 펴졌고, 망치로 두드려도 흠집이 나지 않았으며, 라이터로 태워도 그을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캐빗 대위는 반대로 자신이 본 것은 대나무 막대와 은박지, 고무 조각 정도였다고 훨씬 평범하게 회상했다. 같은 현장을 본 두 사람의 기억이 이렇게 갈리는 것부터가 이 사건을 복잡하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다.

비행접시에서 기상 기구로, 하루 만의 반전
7월 8일 발표된 보도자료는 곧바로 AP통신을 타고 전국으로 퍼졌다. 로즈웰뿐 아니라 시카고, 뉴욕의 신문들까지 “비행접시 포획” 소식을 실었다. 그런데 기지 사령관 윌리엄 블랜차드(William Blanchard) 대령의 상급자였던 제8공군 사령관 로저 라미(Roger Ramey) 준장이 텍사스 포트워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상황을 정리했다. 잔해는 레이더 반사판이 달린 기상 관측 기구, 이른바 레이윈 표적(rawin target)이라는 설명이었다. 기자들 앞에서 마셀 소령이 알루미늄 포일과 나무 막대, 종이 조각을 들고 서 있는 사진까지 찍혔다.
이 사진은 이후 수십 년간 논쟁거리가 됐다. 회의론자들은 사진 속 잔해가 실제로 평범한 기상 기구 부품이라고 보는 반면, 일부 연구자들은 마셀이 들고 있는 게 목장에서 처음 수거한 진짜 잔해가 아니라 나중에 바꿔치기된 물건이라고 주장한다. 마셀 본인도 은퇴 후 인터뷰에서 기자들 앞에서 보여준 건 진짜가 아니었다는 취지로 말한 적이 있다.
1994~1997년, 미 공군의 뒤늦은 해명 — Project Mogul
사건은 1970년대 말까지 거의 잊혔다. 그러다 1978년, 은퇴한 마셀 중령이 UFO 연구자 스탠턴 프리드먼(Stanton Friedman)과 인터뷰하면서 그때 회수한 잔해는 지구의 것이 아니었다고 믿는다고 밝혔고, 이 인터뷰가 1980년 찰스 벌리츠와 윌리엄 무어가 쓴 책 《The Roswell Incident》로 이어지면서 사건은 완전히 다시 불붙었다.
여론의 압박 속에 미 공군은 1994년과 1997년 두 차례에 걸쳐 공식 보고서를 냈다. 1994년 보고서의 결론은 이랬다. 잔해는 기상 기구가 아니라 프로젝트 모굴(Project Mogul)이라는 극비 프로그램에서 쓰인 고고도 풍선 열이었다는 것. 뉴욕대학교 연구팀이 개발한 이 프로젝트는 여러 개의 기구를 줄줄이 묶어 마이크로폰과 레이더 반사판을 매달아 성층권 높이까지 띄우는 방식으로, 목적은 소련의 핵실험을 감지하는 것이었다. 냉전 초기 미국이 소련의 핵무기 개발 상황을 파악할 마땅한 수단이 없던 시절, 대기 중 음파를 이용해 핵실험 징후를 잡아내려 한 시도였다. 실제로 1947년 6월 4일 뉴멕시코주 앨라모고도에서 발사된 모굴 관측기구 중 하나(NY-4로 불리는 비행체)가 레이더에서 사라진 기록이 남아 있고, 그 낙하 예상 지점이 브래즐의 목장과 대체로 겹친다는 게 공군 설명의 핵심이다.

외계인 시신 목격담은 어디서 왔나
1990년대 들어 로즈웰 이야기에는 새로운 층이 하나 더 쌓였다. 잔해뿐 아니라 “외계인 시신”까지 목격했다는 증언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1997년 미 공군의 두 번째 보고서 《The Roswell Report: Case Closed》는 이 부분을 정면으로 다뤘다. 목격자들이 기억하는 작은 인체 형상은 1950년대 공군이 고고도 낙하산 실험에 사용한 인체모형(anthropomorphic dummy)이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보고서의 판단이었다. 실험은 1947년보다 몇 년 뒤인 1950년대 초·중반에 진행됐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서로 다른 시기의 기억이 하나로 뒤섞였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설명에 모두가 만족한 건 아니다. 전직 장의사 글렌 데니스(Glenn Dennis)가 1990년대에 증언한 것처럼, 시점이 명백히 1947년으로 못박힌 증언들도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2차, 3차 증언 상당수는 당사자가 이미 사망했거나 익명으로만 알려져 있어 교차 확인이 쉽지 않다는 한계가 있다.
지금도 남아 있는 질문들
공군의 공식 설명은 두 갈래다. 잔해는 프로젝트 모굴의 풍선, 시신 목격담은 1950년대 실험 기억의 혼선. 그런데도 로즈웰이 여전히 논쟁적인 이유는 단순하다. 첫 번째 발표(비행접시)와 두 번째 발표(기상 기구), 그리고 47년 뒤 나온 세 번째 발표(프로젝트 모굴)가 서로 계속 바뀌었기 때문이다. 정부 기관이 같은 사건을 두고 반세기에 걸쳐 설명을 세 차례나 수정한 사례는 흔치 않다. 회의론자들은 이걸 관료 조직의 뒤늦은 기밀 해제 과정으로 보고, 열혈 연구자들은 진짜 이유를 숨기기 위한 임기응변으로 본다. 어느 쪽이 맞는지는 지금 남은 공개 문서만으로 완전히 가려지지 않는다.
목장에서 발견된 잔해의 실물이 현재 남아 있지 않다는 점도 논쟁을 계속 살려두는 요인이다. 당시 수거된 조각들은 별도로 보존되지 않았고, 프로젝트 모굴 자체가 1990년대 초까지 기밀로 묶여 있어 관련자들의 증언을 그때그때 검증할 방법이 없었다. 로즈웰은 지금 인구 4만 8천여 명의 소도시지만, 매년 7월 첫째 주에는 로즈웰 UFO 페스티벌(Roswell UFO Festival)에 수만 명의 방문객이 몰린다. 1992년 문을 연 국제 UFO 박물관 겸 연구센터(International UFO Museum and Research Center)도 이 도시의 상설 명소가 됐다.

자주 묻는 질문
Q. 로즈웰 잔해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미 공군의 최종 결론은 무엇인가요?
1994년 공군 보고서는 잔해가 프로젝트 모굴에서 쓰인 고고도 풍선 열의 일부, 그중에서도 레이더 반사판과 풍선 재질이었다고 결론지었다. 1947년 6월 발사된 모굴 비행체 NY-4가 레이더 추적에서 사라진 지점이 브래즐 목장과 겹친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다만 이 결론이 마셀 소령이 묘사한 “구겨도 펴지는” 재질의 특성까지 설명하는지에 대해서는 지금도 이견이 남아 있다.
Q. 로즈웰에서 외계인 사체를 봤다는 목격자들은 실제로 존재하나요?
글렌 데니스를 포함해 여러 명이 1990년대 인터뷰에서 시신 목격을 증언했다. 하지만 1997년 공군 보고서는 이들이 언급한 작은 인체 형상이 1950년대 초중반 실시된 고고도 낙하산 실험의 인체모형과 혼동됐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증언자 상당수가 익명이거나 이미 사망해 교차 검증이 어렵다는 점도 함께 지적된다.
Q. 로즈웰에 가면 지금도 볼 수 있는 게 있나요?
메인스트리트에 있는 국제 UFO 박물관 겸 연구센터에서 당시 신문 스크랩, 증언 녹취록, 관련 서적을 전시하고 있다. 매년 7월 초 열리는 UFO 페스티벌에는 코스튬 퍼레이드와 강연이 함께 열리며, 지역 관광청 집계로 수만 명 단위의 방문객이 다녀간다. 사건이 실제로 일어난 브래즐의 옛 목장 부지는 코로나 인근 사유지라 일반 관광객이 접근하기는 쉽지 않다.
예전에 다룬 미국 정부가 공개한 UFO 파일 160건 기사에서도 비슷한 패턴이 보인다. 정부가 뭔가를 처음엔 부인하다가, 수십 년 뒤 부분적으로만 인정하는 흐름 말이다. 로즈웰 사건은 그 패턴의 원조 격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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