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2년 4월 5일 부활절 아침, 네덜란드 서인도회사 소속 탐험가 야코프 로헤벤은 태평양 한복판에서 낯선 해안을 마주했다. 지도에도 없던 이 섬에 상륙한 선원들은 곧 말문이 막혔다. 사람 키의 몇 배에 달하는 거대한 석상들이 해안선을 따라 줄지어 서서 바다 반대편, 그러니까 섬 안쪽을 응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로헤벤은 이 섬을 발견한 날짜를 따서 ‘파스쿠아(부활절)섬’이라 이름 붙였다. 지금 우리가 아는 이스터섬, 그리고 그 위에 서 있는 모아이 석상의 첫 서구식 기록이었다.
석상 자체보다 더 신기한 건 로헤벤 일행의 반응이었다. 이렇게 외딴 섬에, 변변한 나무 한 그루 없어 보이는 땅에 누가 이런 거대한 조각상을 세웠는지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로부터 300년이 지난 지금도 모아이를 둘러싼 질문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누가 만들었고, 어떻게 옮겼고,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 다행히 최근 몇 년 사이 고고학이 이 질문에 상당히 구체적인 답을 내놓기 시작했다.
돌 하나에 마을 하나 — 라노 라라쿠 채석장의 비밀
모아이는 외계에서 온 재료로 만든 게 아니다. 섬 동쪽의 라노 라라쿠라는 사화산 분화구 자체가 거대한 채석장이었다. 응회암이라는 무르고 가공하기 쉬운 화산암 지대인데, 실제로 가 보면 이 산 하나에서 세워지다 만 모아이가 397개나 그대로 박혀 있다. 완성 직전에 버려진 흔적, 조각칼로 쓰인 현무암 도구 자국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어서 제작 과정을 거의 실시간으로 들여다볼 수 있다.
섬 전체에 흩어진 모아이는 약 900개에 이른다. 돌 하나 깎는 데 12~15명 정도의 조각팀이 붙어 평균 1년 가까이 매달렸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UCLA 연구팀의 계산을 보면, 작은 섬치고는 놀라울 만큼 조직적인 노동력 동원 체계가 있었다는 뜻이 된다. 라파누이 사회가 흔히 알려진 것처럼 원시적이고 무계획적인 부족 집단이었다면 애초에 이런 규모의 작업이 가능했을 리 없다.

돌을 굴려서 옮겼을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 ‘걷는 모아이’ 가설
모아이 이동 방법 하면 통나무를 깔고 굴렸을 거라는 상상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실제로 1955년 노르웨이 탐험가 토르 헤이에르달은 Y자형 나무 썰매에 석상을 얹어 끄는 방식을 현지에서 재현해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섬 곳곳에 남은 길의 형태를 보면 이 가설과는 맞아떨어지지 않는 구석이 있다. 채석장에서 뻗어 나온 길이 24킬로미터가 넘는데, 폭은 평균 4.5미터 정도로 좁고 가운데가 살짝 볼록한 형태다. 통나무를 굴리며 지나가기엔 오히려 불편한 구조라는 것이다.
빙엄턴 대학교의 고고학자 칼 리포 연구팀이 내놓은 답은 뜻밖이었다. 모아이가 실제로 ‘걸어서’ 이동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눕혀서 끌지 않고 세운 채로 좌우로 흔들며 지그재그로 나아가게 했다는 설명인데, 처음 들으면 만화 같은 이야기로 들리지만 근거가 제법 탄탄하다. 모아이의 밑면이 D자형으로 앞쪽이 둥글고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려 있는 개체일수록 실제 이동 흔적이 남은 길가에 세워져 있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4.35톤짜리 모아이 복제품에 밧줄 세 가닥을 묶어 양옆에서 4명씩, 뒤에서 10명이 당기는 방식으로 실험했고, 40분 만에 100미터를 이동시키는 데 성공했다. 2023년 학술지 ‘저널 오브 아키올로지컬 사이언스’에 실린 이 연구는 발표 이후로도 여러 반박과 재반박을 거치며 지금까지 가장 설득력 있는 이동 가설로 자리 잡고 있다.

외계인 개입설까지 나올 정도라면 뭔가 있겠다 싶지만
거대한 석상을 원시 도구만으로 세웠다는 사실이 믿기 어려웠던 탓인지, 20세기 중반부터는 외계 문명 개입설 같은 주장도 꾸준히 따라다녔다. 에리히 폰 데니켄 같은 저술가들이 대중서를 통해 퍼뜨린 이야기인데, 정작 라노 라라쿠에 남은 미완성 석상과 도구 흔적을 보면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시행착오를 거치며 사람 손으로 깎고, 세우고, 실패한 흔적까지 그대로 남아 있는 지극히 인간적인 작업의 결과물이라는 뜻이다. 거대 석조 구조물을 어떻게 옮겼는지가 여전히 논쟁거리인 사례는 이스터섬만이 아니다. 영국의 스톤헨지의 비밀, 누가 왜 어떻게 만들었을까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오랫동안 여러 가설을 거쳐 온 유적이다.
라파누이인의 뿌리도 흥미롭다. 폴리네시아 항해자들이 카누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 이 섬에 정착한 시점은 대략 1200년에서 1250년 사이로 추정된다. 그런데 2024년 네이처지에 실린 고대 DNA 분석 결과는 더 놀라운 사실을 보여줬다. 1250년에서 1430년 사이 어느 시점에 아메리카 원주민의 유전자가 섬 주민들과 섞였다는 흔적이 발견된 것이다.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도달보다 한참 앞선 시기에, 태평양 한가운데 외딴 섬 주민이 아메리카 대륙과 접촉했다는 뜻이니 기존 역사 지식으로는 쉽게 설명이 안 되는 대목이다.
섬이 스스로 무너졌다는 이야기, 의외로 근거가 흔들리고 있다
이스터섬 하면 따라붙는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주민들이 모아이를 세우느라 나무를 마구 베어내다가 자원이 고갈되고, 인구까지 급감하며 문명이 스스로 무너졌다는 ‘생태학적 자살’ 서사다.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베스트셀러를 통해 널리 알려진 이야기라 많은 사람이 정설로 받아들인다. 그런데 2024년 9월 네이처에 발표된 고대 유전체 연구는 이 서사에 정면으로 반박을 내놨다. 섬 주민 15명의 유해에서 추출한 DNA를 분석한 결과, 17세기 무렵 인구가 급감했다는 유전적 병목 현상의 흔적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구는 어떻게 됐을까. 연구팀에 따르면 13세기 정착 이후 유럽인과 접촉하는 18세기까지 인구는 꾸준히, 완만하게 늘어났다. 실제로 큰 폭의 인구 감소가 벌어진 시점은 1860년대, 페루 노예 상인들이 섬을 습격해 주민의 3분의 1가량을 강제로 끌고 간 이후였다. 섬이 스스로 무너진 게 아니라 외부의 폭력에 의해 무너졌다는 것이니, 그동안 널리 퍼진 ‘자멸한 문명’ 이미지와는 상당히 다른 그림이다.

모아이가 왜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답은 비교적 명확하다. 조상이나 부족장을 신격화해 마을을 지켜보게 하려는 목적이었고, 실제로 대부분의 석상은 등을 바다 쪽에 두고 마을 안쪽을 바라보도록 세워져 있다. 다만 누가 어떤 순서로 어떤 씨족을 위해 얼마나 많은 자원을 들여 세웠는지, 왜 어느 시점부터 제작이 뚝 끊겼는지는 아직 세부까지 다 밝혀지지 않았다. 채석장에 미완성 석상 수백 개가 그대로 남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뭔가 갑작스러운 사정으로 작업이 중단됐음을 암시한다.
FAQ
모아이 석상은 전부 몇 개나 남아 있나요?
섬 전역에서 확인된 모아이는 약 900개로 집계된다. 이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397개는 라노 라라쿠 채석장 안에 미완성 상태로 남아 있고, 나머지는 해안가의 제단인 아후 위에 세워지거나 운반 도중 길가에 쓰러진 채로 발견됐다. 예를 들어 가장 유명한 아후 통가리키에는 15개의 모아이가 한 줄로 복원돼 있어서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다.
제일 큰 모아이는 얼마나 큰가요?
세워진 것 중 가장 큰 개체는 파로라는 이름의 모아이로 높이가 약 10미터에 무게는 82톤에 달한다. 라노 라라쿠 채석장에는 이보다 훨씬 큰, 21미터짜리 미완성 모아이도 누워 있는데 끝내 완성되지 못한 채 산에서 떨어져 나오지도 못했다. 만약 이 석상이 완성돼 세워졌다면 이동 방식 논쟁 자체가 지금과는 다른 양상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새로운 모아이가 발견되나요?
그렇다. 2025년 11월 CNN이 보도한 라노 라라쿠 채석장 연구에서도 그동안 흙에 파묻혀 몸통까지 확인되지 않았던 석상들의 전체 형태와 제작 순서에 관한 새로운 단서가 나왔다. 섬 전체가 아직 발굴이 끝나지 않은 현장인 셈이라, 앞으로도 이동 방식이나 사회 구조에 관한 정설이 몇 차례 더 바뀔 가능성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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