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 40분, 서울역 승강장은 아직 어둡다. 테이크아웃 아메리카노 뚜껑 틈으로 김이 새어 나오고, 옆자리 남자는 벌써 좌석에 기대 눈을 감았다. 부산까지 2시간 40분, 부산역 도착이 오전 8시 20분쯤이니 해 뜨자마자 바다를 보는 일정도 그렇게 무리는 아니다. 다만 이 코스, 해운대에서 감천문화마을을 거쳐 자갈치 밤바다까지 하루에 끝내려면 동선을 허투루 짜면 안 된다. 시간에 쫓겨 편의점 김밥으로 저녁을 때운 게 두 번, 그 실패 끝에 겨우 맞춘 순서가 이거다.
오전 8시 40분, 해운대는 생각보다 조용하다
해운대해수욕장에 도착하면 백사장 폭이 생각보다 넓어서 놀란다. 1.5km 길이에 넓은 구간은 폭이 50m를 넘는다는데, 여름 성수기 사진만 보고 오면 겨울이든 봄이든 “여기 진짜 그 해운대 맞아?” 싶을 만큼 한산하다. 부산역에서는 지하철 1호선으로 서면까지, 거기서 2호선으로 갈아타면 해운대역까지 45분 정도 걸린다는 것만 기억해두면 된다. 이 시간대는 관광객보다 출근하는 사람이 더 많아서, 바다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나 혼자인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달맞이길 쪽으로 15분쯤 걸어 올라가면 미포항이 나오고, 절벽 위로 통유리 오션뷰 카페들이 줄지어 있다. 아메리카노 한 잔이 7,000원대라 서울 번화가 가격과 비슷한데, 창가 자리에 앉아 파도가 부서지는 걸 내려다보고 있으면 그 돈으로 3면이 바다인 상영관을 통째로 빌린 기분이 든다. 주말이라면 오픈 직후인 10시쯤 가야 창가 자리를 잡을 확률이 높다. 여기서 30분만 앉아 있어도 하루 일정이 벌써 여유로워진 느낌인데, 이건 착각이다. 다음 목적지가 절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감천문화마을, 사진보다 계단이 문제다
해운대에서 감천문화마을까지는 택시로 25분 남짓, 요금은 2만 2천 원 안팎이다. 대중교통을 고집한다면 해운대역에서 2호선을 타고 서면에서 1호선으로 환승, 토성역 6번 출구로 나와야 한다. 거기서 마을버스 1-1번이나 2번, 2-2번을 타면 10분 만에 마을 입구에 닿는다. 배차 간격이 15~20분이라 놓치면 애매하게 기다리게 되니, 이 구간만큼은 택시 쪽이 마음 편하다. 남포동에서 출발한다면 기본요금 수준인 5,000~6,000원 정도면 충분하다.

‘한국의 마추픽추’라는 별명이 좀 오버 아닌가 싶었는데, 전망대에 올라서면 그 말이 왜 나왔는지 바로 이해된다. 산비탈을 따라 파스텔톤 집들이 계단식으로 붙어 있고, 골목마다 벽화와 조형물이 숨어 있다. 어린왕자와 사막여우 동상 앞은 줄이 길어서 평일 오후 2시에도 10분은 기다려야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문제는 계단이다. 마을 전체가 경사지라 골목 투어를 제대로 하려면 최소 1시간 반은 잡아야 하고, 운동화가 아니면 후회한다. 힘을 아끼고 싶다면 순서를 거꾸로 타는 것도 방법이다. 전망대에서 시작해 아래로 내려가면 체감 난이도가 절반 이하로 줄어든다. 입구에서 파는 스탬프 지도가 2,000원인데, 이거 하나 들고 다니면 놓치는 골목 없이 다 돌 수 있어서 의외로 유용했다.
점심은 마을 초입 국밥집에서 돼지국밥으로 해결했다. 9,000원, 양이 아주 많지는 않은데 오히려 다행이다. 저녁에 자갈치에서 회를 먹어야 하니 국밥은 밥을 3분의 1쯤 남기는 게 낫다. 배부르게 먹었다가는 나중에 회가 눈앞에 있어도 젓가락이 안 간다.
오후 5시, 자갈치로 넘어가는 타이밍이 핵심이다
감천문화마을에서 자갈치시장까지는 택시로 15분, 요금은 만 원 안쪽이다. 여기서 시간을 잘 맞춰야 하는 이유가 있다. 너무 일찍 도착하면 낮 시간이라 시장 특유의 활기가 덜하고, 너무 늦으면 좌판 상인들이 벌써 정리를 시작한다. 오후 5시에서 6시 사이 도착을 목표로 잡으면 낮의 시장 구경과 저녁의 야경을 둘 다 놓치지 않는다.
자갈치시장 2층 식당가에서 회 한 접시를 시키면 2인 기준 4~6만 원대. 비싸다고 느낄 수도 있는데, 활어를 그 자리에서 썰어주는 걸 보고 나면 값을 깎을 마음이 안 든다. 회로 배를 채우기 부담스럽다면 1층 좌판에서 파는 만 원짜리 물회도 나쁘지 않은 대안이다. 그러고도 입이 심심하다면 걸어서 5분 거리인 국제시장 씨앗호떡, BIFF광장 비빔당면으로 간식 로드를 이어가면 된다. 하나에 2,000~3,000원이라 부담도 없다.

해가 완전히 떨어지고 나면 자갈치시장 앞 방파제 쪽으로 나가보길 권한다. 영도대교 불빛과 건너편 부산항대교 조명이 검은 물 위에 겹쳐 번지는데, 낮에 본 감천문화마을의 파스텔톤과는 완전히 다른 얼굴이다. 하루 종일 걸어 다닌 다리가 이 야경 앞에서는 이상하게 덜 아프게 느껴진다. 부산역까지는 여기서 택시로 10분, 지하철로는 남포역에서 1호선을 타면 15분이면 충분하다. 서울행 막차 KTX는 밤 10시 30분 전후로 넉넉히 있으니 시간에 쫓길 걱정은 크지 않다.
왜 하필 이 순서인가
해운대-감천-자갈치 순서를 고집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감천문화마을의 파스텔톤 벽은 오후 햇빛이 정면으로 비칠 때 색이 제일 살아난다. 낮 12시부터 오후 2시 사이가 그 시간대다. 반대로 자갈치는 노을과 야경이 겹치는 해 질 무렵이 가장 예쁜 곳이라, 하루의 뒷부분에 배치해야 그림이 산다. 순서를 거꾸로, 그러니까 자갈치를 먼저 가고 감천을 나중에 가면 골목 투어를 어둑한 데서 해야 해서 사진이 흐릿하게 나온다. 실제로 첫 방문 때 이 순서를 반대로 했다가 사진을 절반쯤 다시 찍어야 했다. 순서 하나 바꿨을 뿐인데 결과물이 이렇게 달라질 줄은 그때는 몰랐다.
정리하면 오전 8시 반 해운대 도착, 9시부터 10시까지 백사장과 달맞이길 카페, 11시쯤 택시로 감천문화마을 이동, 낮 12시부터 오후 2시까지 마을 골목 투어와 점심, 오후 2시 반 자갈치시장 이동해서 낮 시장 구경, 5시부터 저녁 겸 회 한 접시, 해 진 뒤 방파제 야경까지 보면 하루가 딱 채워진다. 이전에 소개했던 전주 당일치기 코스나 강릉 당일치기 코스와 비교하면 부산은 이동 거리가 훨씬 짧고 대중교통이 촘촘하다는 게 장점이다. 대신 볼거리가 한곳에 몰려 있어서 오히려 욕심을 부리다 시간에 쫓기기 쉬운 도시이기도 하다.
자주 묻는 질문
Q. 서울에서 당일치기로 다녀오면 KTX 왕복 비용이 얼마나 드나요?
일반실 기준 왕복 약 12만 원 안팎이다. 특실은 편도 1만 원 정도 더 비싸다. 평일 오전 6시대 열차는 그나마 여유가 있지만 주말에는 최소 2주 전 예매를 권한다.
Q. 비 오는 날에도 이 코스가 괜찮을까요?
해운대 백사장 산책은 아쉬워지지만 감천문화마을은 골목 자체가 지붕 없는 구간이 많아 우산이 필수다. 대신 자갈치시장은 실내 상가라 비를 피하기 좋고, 국제시장과 BIFF광장도 아케이드 지붕이 있어 우천 시엔 이 두 곳 위주로 동선을 짜는 게 낫다.
Q. 감천문화마을 계단이 부담스러운데 대안이 있나요?
앞서 말한 대로 전망대에서 시작해 아래로 내려가는 역방향 코스를 추천한다. 마을버스가 서는 상단 정류장 위치를 미리 확인하고 출발하면 헤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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